20세기의 산물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21세기의 우리가 얻은 것은?
20세기의 산물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21세기의 우리가 얻은 것은?
  • 오희초 수습기자
  • 승인 2020.08.26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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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에 관하여

[업코리아=오희초 수습기자] 굳어버린 시선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새로운 사상은 20세기 많은 젊은 층을 매료시켰다. 포스트모더니즘, 곧 탈 근대주의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소식 이였으며 뭇 사람들에겐 답답한 고구마 개념에 사이다를 들이키는 듯한 갈증 해소였을 것이다. 누구나 보다 인간적인 사상이 사회 개혁을 일으킴이 마땅하다 여길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중간-말에 시작된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이 뒤덮은 현재 21세기는, 과연 모두가 꿈꿨던 인간다운 사회로 변화하였을까? 과연 인간다운 사회란 무엇일까?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로, 필자는 이를 ‘이해 하기 싫은 기준으로부터 의 탈피’라 정의한다. 스스로 이해 하고 싶지 않거나 납득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도입하여 비 선형화 시키려는 경향이다. ‘도덕은 상대적이다’는 탈 근대주의의 움직임은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했던 20세기, 프랑스로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몰고온 ‘해체주의(De-constructivism)’는 신(神)이나 이성과 같은 ‘질서의 기초’에 있는 것을 비판하고 사물, 언어, 존재, 중심, 주변 등 모든 것의 이원론적 대립을 부정하며 다원론(Pluralism)을 주장하였고, 이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발판이 되었다. 물론 그의 철학은 당시 뿌리깊게 자리잡은 여성과 아이의 인권 그리고 인종과 제도 등 ‘소외된 비주류’에 대한 인식을 재조명하는 것에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질서의 기초와 중심 축 까지도 해체함으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가 흔들리고 더이상 완전한 것은 없으며 소수의 견해가 인정받는 것 만이 진정한 도덕의 의미인 냥 사회적 혼란으로 자리 잡았다. 서구 사회를 강타한 이 흐름은 지금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얼마전 대한민국의 이슈로 다시 떠오른 차별금지법(差別禁止法) 입법 논란이 기존 인식으로부터 탈피하려는 흐름인 포스트 모더니즘의 산물이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 할 것이다. 그 사실은 차별금지법을 통해 쟁취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살피면 알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성별, 성 정체성, 신체조건, 외모, 나이, 인종, 언어, 혼인 여부, 성 지향성, 임신과 출산, 가족 형태, 종교 등 어떤 상태나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던지 이는 차별 될 대상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 인정 받아야 함을 법으로 보장 받으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 처분,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차별과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법의 금지조항들을 통해, 이 것이 개인을 향한 불합리한 판단을 제제함과 더불어 소수 비주류에 대한 판단 통제 그리고 기존의 인식을 탈피 하려는 움직임 임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스스로 차별을 받고 있어 고통받는 자들, 곧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자들이 말하는 ‘차별’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차별, 곧 두개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 적 수준 적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는 것. 여기서 구별되는 두 가지 이상의 개념들의 등급이란 무엇이며, 이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 일까? 아니면 부여되는 것일까?

 

자크 데리다가 해체주의를 통해 타파하고 싶었던 개념은 ‘구조주의’였다. 구조주의의 뿌리 개념인 ‘이항대립’은 언어나 사유의 두 이론적 대립을 엄격히 대립시켜 정의한 체계를 말한다. 이 개념은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주장한 것으로 예를 들어 안과 밖, 위와 아래, 남자와 여자, 빛과 어둠 그리고 선과 악 등의 두 가지 배타적 구조가 상호적인 결정 안에 정의 된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의 개념은 서로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구분되어 배타적이지만 상호적으로 대칭된 구조이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의 상식적 순서와 피상적 의미, 그리고 가치 편향을 질타했다. 그는 두 가지의 대립되는 개념을 묶어 생각함이 자연스럽게 우등과 열등을 매칭되어, 생각의 고립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 듯 하다. 예를 들어, 위-아래 의 대칭 구조를 해체하여, 더이상 위는 위가 아닐 수 있고 아래도 더이상 아래가 아닐 수 있다, 왜냐면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독창적 개념을 도입했다. 마찬가지로, 남자-여자의 개념도 남자와 여자가 아닌 남자 따로 여자 따로 해체된 개념으로 보았고 그로 인해 누군가 자신을 제3의 성이라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견해이다.

그는 구분하여 당연한 듯 연결한 전형적인 개념을 해체하여 각자의 개념으로 보아야 비교되지 않고 각각의 가치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해체에 집중한 나머지 사실적인 다름과 부여되는 가치적 다름의 차이 까지 해체 해 놓은 건 아닐까? 안 과 밖이 위치적으로 다른 것은 어느 쪽이 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와 관계없는 사실 적 다름이다. 또 남자와 여자가 신체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가치 구분과 상관없는 사실적 다름이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할 부분은 사실적 차이를 구분함에 따라 틀린 가치를 함께 부여하는 판단의 편향이다. 누군가 안이 밖보다 더 좋다라고 가치를 부여 한다면, 그건 개인적 견해로 부여한 가치이지, 사실적 가치와 다르다는 의미이다.

 

차이는 차별과 다른 개념이다. 차별금지법에 명시된 개념들 대부분은 다름에 따른 합리적 가치 추구이다. 예를 들어 다른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인종일지라도, 다른 언어를 사용해도, 또 혼인 유무와 관계없이, 더 나아가 그것이 범죄 연루의 유무일 지라도, 다른 상황을 가진 사람으로서 존중 받을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진하게 깔린 불 합리적 관점이나 사회적 이미지로 개인의 상태나 사건을 함부로 치부하는 것은 분명 타파 되어야 할 케케묵은 인식이다.

그러나 이 외에 차별금지법 속 몇가지의 개념은 다름이 아닌, 해체주의의 관점으로 봐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성 정체성이나 성 지향성을 가지고 있던지 인정을 받아야 한다 라는 부분은 스스로가 가진 신체적 사실을 떠나 제 3의 또는 그 이외의 성별을 주장하는 것인데, 이 부분은 남-녀 두 다른 성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적 다름의 개념을 떠나 해체주의적 관점으로 봐야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차별이 아닌 관점 적 차이이다. 사회적 불합리한 시선이나 사실적 구분에 발생되는 개인의 가치 편향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생각으로 이해를 시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은 법적으로 강압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부분이 아니다.

과연 사회가 개인이 가진 시각을 해체주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법적인 조치로 가능할까? 소수를 위한 법이 다른 소수 부류를 낳아 역 차별함이 법의 의도에 맞는 판결일까? 이 것은 사실적 다름으로 인정 받지 못해 억울한 인권 사이에 숨어든 포스트 모더니즘의 교묘함 은 아닐까? 나는 이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에 젖은 법의 행보가 사회의 혼란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을 지 조바심이 든다.

 

이런 포스트 모더니즘의 양상은 앞으로 더 많은 부분에서 나타날 것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각 개인은 자크 데리다의 자기 비판적 사고 방식은 배우되, 다름과 틀림을 구분 함으로 각 개념에 올바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올바른 판단은 기준과 질서의 기초가 있을 때 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빨간 신호등 앞에서 옆 차가 슬쩍 움직일 때, 마치 내 차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움직이지 않는 길가의 전봇대를 기준 삼아 내 차가 움직이는지 아닌지 알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가치 곧 진리는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부른다. 사회에 법이 필요한 이유도 정확한 기준을 정하기 위함이다. 만일 그 기준이 움직이고 변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우리는 그것을 기준 삼아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데리다의 기준 개념 해체는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비효율적이며 올바른 사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해체주의에서 비롯된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회적 인식에 관하여, 대학생 선교회 국제 지도자 조시 맥도웰(Josh McDowell)과 밥 호스테틀러(Bob Hostetler)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과 의사소통을 하려는 그 어떠한 시스템이나 진술은 모두 권력 놀음으로 치부되며, 다른 문화를 지배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질서와 진리를 배척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쉽게 받아들였을 때 초래되는 혼란과 희생은 크기는 사회적으로 클 것이며, 다음 세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버거울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지금, 앞으로 나올 사상은 더욱 급진적일 것이다. 사실적 근거와 관계없는 주장에 무한한 자유를 주는 사회가 인간적인 사회라고 정의 한다면, 각자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개인들로 초래 되는 사회적 혼란은 누가 감당해야하는 부분인지 의문 스럽다. 결국 사회의 혼란은 개인의 혼란으로 직결된다. 인격적인 사회, 곧 자유로운 사회를 보장 받기 위해선 온전한 질서와 규범은 필요하다. 그리고 질서와 규범을 따르고 인정하기 위한 개인의 깊은 이해와 고찰이 필요하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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