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지역 최초로‘조선왕실 원당願堂’실체 밝혀준 ‘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칠성각 ’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서울·경기지역 최초로‘조선왕실 원당願堂’실체 밝혀준 ‘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칠성각 ’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 변진주 기자
  • 승인 2020.08.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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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칠성각 수리 중 불단 아래에서 발견된 신자료,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
▲ 봉원사 칠성각
[업코리아] 서울시는 조선시대 영조의 장손 ‘의소세손’의 무덤인 ‘의소묘’ 원당에 대한 실체를 밝혀준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봉원사 칠성각’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2011년, ‘봉원사 칠성각’의 불단을 수리하면서 발견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서울시의 문화재 지정조사 과정에서 ‘건식 탁본’과 ‘자외선 촬영’을 진행해 정확한 각자를 판독했다.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사변형의 형태로 가로와 세로선대에 봉이 달려 있는 구조이다.

각판의 글자는 인위적으로 끌을 이용해 깎아내었고 바탕칠 또한 도구를 사용해 강하게 벗겨진 상태이다.

각자 분석 결과 ‘의소제각’ 4자를 양각했다이 확인됐다.

편액에 각자된 ‘의소제각’은 영조의 장손이며 정조의 동복형인 의소세손의 명복을 축원하기 위해 건립된 전각을 뜻한다.

영조실록 31년 11월 20일 기축 첫번째 기사에 ‘.지금 의소 묘의 원당인 봉원사의 위전을 본 고을에 망정했다고 한다.

’라 해 의소세손의 원당이 봉원사에 건립되어 있었다.

이 기록으로 전한다.

‘의소묘 원당’의 전각명으로 보이는 ‘의소제각’은 서대문 밖 안현의 남쪽 기슭에 만들어진 ‘의소묘’, 영조의 잠저인 경복궁 서편 창의궁 자리에 세워졌던 ‘사당’과 별개로 영조가 봉원사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봉원사에 건립된 ‘의소제각’은 의소세손의 신위를 모신 “신당”으로 불리었고 지금의 ‘칠성각’은 1864년에 새로이 중건되면서 붙여진 전각명이다.

칠성각 상량기록의 서문인‘봉원사중수신당서’ 에 따르면, “기존의 신당이 퇴락해 새로이 중건하고 칠성각이라 편액 했는데, … 때는 임금의 즉위 2년 갑자년 6월이다”고 했다.

이를 통해 칠성각은 1864년에 중건됐고 ‘칠성각’이라 편액을 건 ‘신당’임을 알 수 있다.

‘신당’이라는 전각명은 사찰에서 흔하지는 않은 것으로 ‘봉원사의 신당’은 불교의 존상 대신 유교식 신위를 봉안한 건축물을 지칭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봉원사의 신당’이‘영조실록’에 기록 된 ‘의소세손의 원당’이자 ‘의소제각 편액’이 게시된 칠성각으로 파악된다.

‘봉원사 칠성각’은 ‘조선왕실 원당’을 목적으로 건축된 내력과 관련 유물이 남아 있는 서울 · 경기지역 유일한 사례로서 ‘조선왕실 원당건축 연구’의 기준작이 됨으로써 그 가치가 높다.

봉원사 칠성각은 주불전인 대웅전의 북서쪽, 경사가 가파른 둔덕 에 자리하고 있다.

전면 3칸 5량가 맞배지붕의 소규모 전각으로 측면과 후면에는 화방벽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공포는 2출목의 다포이며 연봉 · 봉두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조선 후기 불전의 전형적인 의장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864년 작성된‘봉원사중수신당서’에는 칠성각 중수를 ‘중구육영칠성지각’이라 표현해 주목된다.

이는 ‘둥근 기둥 6개를 가진 칠성각을 거듭 세웠다’라는 의미로 칠 성각 전면의 4개 기둥보다 더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개 벽 에 붙어 있는 기둥을 뜻하는 ‘주’는 기둥사이 공간을 의미하는 ‘간’을 쓴다.

반면, ‘영’은 사당이나 정당과 같 이 전퇴를 구성해 예배대상 전면의 기둥이 모두 ‘楹’으로 구성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봉원사 칠성각’을 단순히 칠성각이라는 부속전각으로 전제해서 보면 전면의 다포는 상당히 격이 높은 건축물의 의장 수법이고 규모 역시 4.5칸으로 일반적인 칠성각에 비해 큰 편이다.

건물의 평면에서도 소규모 건축물에 퇴칸을 앞쪽에 두어 전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유교식 사당의 평면 유형을 가져 차이를 가진다.

이러한 ‘봉원사 칠성각’의 건축적 요소와 관련 기록은 칠성각이 의소세손의 신위를 모신 ‘원당’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됐다을 재입증한다.

그런데 서울 · 경기지역에 건립된 200여 동의 조선왕실 원당 가운데 ‘편액’의 실물이 발견된 사례는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유일하다.

조선시대 왕실의 원찰로 알려진 사찰과 그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많지만, 원당으로 사용되었던 건축물이 확인된 사례는 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 의성 고운사 연수전, 송광사 성수전 뿐이다.

더욱이 서울 · 경기지역에서는 실제 원당으로 사용된 건축물이 지금까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 흥천사의 경우, 기록을 통해 1846년에 나라의 축원장소로 칠성각을 세운 사실이 전한다.

그러므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의 발견은 ‘조선왕실 원당’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희소한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봉원사 칠성각’의 내부 ‘공간 구조’ 및 ‘장부 결구 흔적’을 통해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게시된 위치를 추정 가능하다.

사찰 불전 내부의 고주는 불교의 실내의식 성행으로 고주를 불전 내부공간 뒤쪽으로 옮겨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반면 ‘봉원사 칠성각’ 같이 전퇴고주를 두는 것은 이러한 양상과 배치되는 특이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봉원사 칠성각’ 내부에 설치된 고주의 측면에는 2개 이상의 목부재를 연결할 때 사용된 전통 건축기법인 장부짜임의 결구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장부짜임에 설치되었을 시설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종의 성수전 원당이었던 ‘순천 송광사 관음전 궁판’과 ‘고운사 연수전 편액’을 통해 유추해 볼 때,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칠성각의 불단 전면에 감실 형태의 공간에 게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언제 훼손됐고 왜 하필 ‘봉원사 칠성각’ 불단 아래에 숨겨져 있었을까?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사찰의 조선왕실 원당이 폐쇄됐고 관련 편액들이 모두 훼철됐다.

대표적인 사례인 ‘고종의 성수전 원당’이었던 ‘순천 송광사 관음전’ 전패는 일제강점기에 강제 훼철되어 원형의 1/3이 훼손된 채 탁자로 개조됐다.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 또한,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궤를 같이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이 칠성각 불단 아래에 숨겨진 경위는 서울 진관사에 비장되었던 ‘진관사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의 사례가 참고된다.

지난 2009년, 서울 진관사 칠성각의 해체·보수과정에서 불단과 벽체 사이에서 ‘진관사 소장 태극기와 독립신문류’가 발견됐다.

신문류의 발행일자가 1919년 6~12월 사이에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동 자료는 3.1운동을 기점으로 어느 시기에 불단 내에 숨겨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진관사 또한 ‘칠성각의 불단’이라는 공간에 우리나라의 중요 문화재가 숨겨졌다는 점이다.

조선왕실과 관련된 유물인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3.1 독립운동과 관련한 문화재인 ‘진관사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는 분명 이를 ‘칠성각 불단’이라는 공간에 숨겨야만 하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비록, 현재의 연구성과로는 ‘칠성각’이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을 불교에서 흡수해 모신 공간으로 그 성격을 한정하지만, 봉원사와 진관사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칠성각’이라는 공간이 내포한 또 다른 상징적 의미와 역사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은 ‘봉원사 칠성각’이 조선왕실 원당이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 증거이자, 원당 건축물의 편액 중 현전하는 극히 희귀한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봉원사 칠성각’은 서울 · 경기지역에서 조선왕실 원당 건축물로 확인된 유일한 사례로서 조선왕실 원당의 건립과 운영을 알 수 있으므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서울시는 ‘봉원사 의소제각 편액’과 ‘봉원사 칠성각’을 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보존 · 관리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화재 · 산사태 등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부동산 문화재에 대해 실측, 사진촬영, 가상현실 등으로 기록을 남겨 보전하고 있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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