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오야붕, 그만 물러나시죠?'
'하야시 오야붕, 그만 물러나시죠?'
  • 길준범
  • 승인 2003.09.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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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드라마 속 일본인의 이미지
드디어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의 빗장이 열렸다. 내년 1월부터는 일본가요 음반을 시중 음반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8세 등급 이상의 영화를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고, 게임 소프트웨어물에 대한 수입제한 조치도 철폐된다.

하지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마지막 단계인 방송과 에니메이션 부분은 이번 개방 조치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일본방송이 자유롭게 방송되면 국민정체성이 흔들릴 염려가 있고 에니메이션 수입제한이 철폐되면 국내 에니메이션 산업이 고사할 우려가 있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일본 방송 프로그램이 국내에서 방송된다 해도 오락물이 전면에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 오락프로그램물은 선정성이 지나쳐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대신 일본 드라마는 관심을 불러 일으킬 공산이 크다. 최근 방영된 SBS '요조 숙녀'가 일본의 '야마토나데시코'라는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일본 드라마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한 미묘한 국민감정이 존재하므로 일본 드라마가 방송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드라마가 방송된다면 국내 시청자들은 TV에서 처음으로 일본인에 의해 그려진 '일본인'을 만나게 된다. TV 드라마는 평균적인 대중이 꿈꾸는 욕망과 삶 속 희노애락을 세련되게 그려내기에 동시대 대중의 호흡을 생생하게 담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국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한국인의 고정관념으로 그려냈던 일본인 이미지와는 다른, 생생한 동시대 일본인의 모습을 접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TV 드라마 속 일본인은 어떤 이미지로 나타났을까. 우리 드라마에서 보여진 일본인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하야시: 냉정한 성격, 조직의 부속품으로 그려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는 일본인은 바로 '하야시'이다. 영화와 TV 드라마 속에서 일제 말 김두한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그는 '알고보니 조선인이었다'라는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졌을만큼 적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실제로도 하야시는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많은 부분 조선인인 김두한과 대조되는데 냉정하고 정없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러한 묘사는 '일본인은 정이 없고 냉정하다'라는 한국인의 고정관념을 보여준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각기 주인공과 반동인물의 역할을 수행했던 김두한 집단과 하야시 집단이 묘사된 부분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각 개인간의 거리와 상대방에 대한 접촉의 정도가 매우 다르게 보여지는 것이다.

김두한과 그 조직원들은 항상 서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술을 마시면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부둥켜 안기도 한다. 사무실 안에서 회의를 할 때에도 옹기종기 모여앉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하야시와 야쿠자들은 언제나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다다미방에서 회의를 할 때에는 수직적인 배열에 따라 서로 떨어져 앉으며 서로 눈빛을 마주치지 않고 앞만 보며 얘기한다. 심지어 가족끼리 대화를 할 때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우리'라는 공동체 정서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은 이러한 묘사를 보고 김두한 집단을 가족과 같은 정이 넘치는 '공동체'로, 하야시 집단을 냉정하고 정없는 '조직'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야시 집단은 단순한 야쿠자 집단의 의미에 멈추지 않는다. 철저한 상명하복이 이루어지는 하야시 집단은 일제의 막강한 관료주의를 축소해놓은 것과 같아서 그 자체로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일본인은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조직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와 대조되어 김두한 집단은 유협(遊俠)집단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들은 조직 자체의 생존과 발전보다 서로간의 의리를 중요시한다. 일본제국이라는 구조적인 거대한 악과 맞서는 김두한 조직의 활약은 마치 난세 속에서 유협집단으로 일어섰던 유비나 주원장을 연상시킨다.

일제시대라는 암울한 시대상황이 남긴 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아직 한국사회 내에 뿌리깊이 남아있다. 때문에 드라마 상에서 많은 일본인 케릭터들은 냉정한 성격으로 묘사되거나 조직의 부속품으로만 그려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사극 속 일본인이다. 3.1절이나 광복절 특집극에서 등장했던 악랄한 일본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일제의 한국 통치가 계속되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2001년 작 영화 '로스트 메모리즈'에서는 일본인 사이고 쇼지로가 등장한다. 그는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남자이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일본제국)을 위해 역사의 진실을 외면한다. '로스트 메모리즈'는 일본인 개인(남성)을 인간미있게 그려내어 과거 드라마 속 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상당 부분 불식시켰다. 하지만 그 역시 결국 거대조직 내에서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수동적인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한계점을 드러냈다.


유민: 비련의 순애보, 한국남+일본녀 공식

이렇게 정없이 느껴지는 일본과 화해하기 위해 한일 남녀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여러 차레 제작되었다면 과장일까?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대체로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다룬 드라마가 많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방송사가 공동 제작했던 두 편의 드라마, 'Friend', '소나기, 비 갠 오후'에는 실제 한국과 일본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서로 다른 양국을 배경으로 했기에 인물과 스토리 전개가 평면적이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상대국의 실제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점은 긍정적이었다. 이 두 드라마는 한국남과 일본녀의 사랑이야기라는 한국 드라마의 기본 공식에 충실하다.

한국남과 일본녀의 사랑이야기의 속을 들여다보면 일본을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에 비유하고 이 여성 이미지와의 사랑을 통해 일본과 심리적 거리를 좁히겠다는 계산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계산을 통해 일제의 폭력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일본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수동적인 일본인 여성 캐릭터는 주로 한국 남성에게 보호받는 데 익숙한데 이는 약자를 여성적인 이미지로 고착시키려는 오리엔탈리즘적인 발상이기도 하다.

앞에서 얘기했던 '야인시대'에서는 조선남자인 김두한을 사랑하는 일본 여인 나미코가 나온다. 그녀는 웬만한 남자 못지않은 담력과 총명함을 지녔으나 김두한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안달이 난 순애보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 등장했던 일본인의 부정적인 이미지인 '집요함'을 갖추었으면서도 결국 남성에게 종속되는 순종적인 모습을 가진 점은 흥미롭다.

한국 드라마에 진출한 첫 일본인 배우 '유민' 역시 남성에게 순종적인 일본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의 이미지와 그다지 멀어보이지 않는다. 처음 출연했던 가족 시트콤에서 그녀는 남성들이 중고교시절에 꿈꿔보았을 청순하고 예쁜 누나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후 SBS '올인'에서 당차고 실력있지만 결국 사랑하는 남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순종녀로 출연했고 현재 방송되는 MBC '좋은 남자'에서는 한눈에 반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만 관심있는 사진작가를 연기하고 있다. 순종적인 일본여인 상을 여러차례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99년 MBC에서 8.15 특집극으로 방송되었던 '미찌꼬'는 일제 말에서 해방에 이르는 시기에 유부남인 남자(감우성)와 일본인 처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자영)을 그리고 있다. 97년 MBC의 3.1절 특집극인 '사랑의 조건'은 부모 세대부터 이어져온 한,일 두 남녀(정준호, 신애라)의 사랑이야기이다. 이같은 한국남과 일본녀라는 공식에서 벗어난 드라마는 91년 8월 MBC 베스트극장 '달'이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왜장(최민수)과 조선처녀(오연수)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조선처녀는 결국 조국을 위해 사랑하던 왜장을 저버리고 만다. 이 드라마는 한국 여성이 일본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민족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보여준다.

진화하라, 일본인 캐릭터여

일본인 캐릭터도 시대가 흐르며 조금씩 진화한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천년지애'에서는 타쓰지라는 일본인이 등장했다. 사랑하는 여인에 무조건 집착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집요하게 행동하는 것은 기존 드라마 속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희생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면은 그가 조직과 상관없는 개인만의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우리 나라 TV 속 일본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일본 드라마가 방송되면 '우리 드라마 속 일본인'의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릴 수 있을까? 일본인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악질 순사나 비련의 여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길준범 기자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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