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이 시대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 정승우 객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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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리베르 플레이트에서 데뷔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는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1991년 이탈리아의 AFC 피오렌티나로 이적한다. 그리고 그는 팀과 사랑에 빠진다. 피오렌티나에서 1999년까지 331경기를뛰며 203골을 만들어 냈다. 1994년 팀이 강등당했을 때에는 수많은 구애를 뿌리치고 팀에 남아 승격을 이뤄 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2000-2001시즌을 앞두고 AS 로마로 이적하게 된다. 팀의 재정이 악화되어 더 이상 팀에 머물 수 없게 된 것이다.
로마로 떠나간 바티스투타는 친정 팀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결승 골을 넣고 눈물을 쏟아낸다. 다음 날 신문에서는 그를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라고 표현했다.

현대 유럽 축구 시장은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2015-2016시즌 기준 유럽 축구 시장 규모는 246억 유로(32조 3천 5백억 원)에 달한다. 1년 사이 12.8%가 증가했다. 입장권, 중계료, 기업 스폰 등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이 매 시즌 오간다. 팀의 보드진은 수익을 위해 스타 플레이어를 사기도, 팔기도 한다. 선수들은 그들의 꿈과 트로피, 더 많은 급여를 위해 팀을 옮긴다. 자본주의의 시대에 선수들의 정당한 이적을 욕할 수 없다.
 
AS 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와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를 마지막으로 오로지 한 팀과 그 팀의 팬들을 위해 헌신하는 로맨티시스트는 보기 힘들어졌다. ‘그라운드의 로맨티시스트 ’가 원 클럽 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세 선수처럼 팀과 팬에게 보여준 사랑을 통해 감동을 준 선수를 로맨티시스트라고 칭하겠다.

[사진=연합뉴스]

아직까지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 중 로맨티시스트가 있을까? 한 명 생각난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주장 마르코 로이스다. 화려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슈팅, 적재적소에 찔러 넣는 패스, 수려한 외모에 리더십도 훌륭하다. 슈퍼스타로서 필요한 모든 걸 갖췄다. 2012-2013시즌 도르트문트로 돌아온 뒤 수많은 이별을 경험했다.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일카이 귄도안, 헨릭 미키타리안, 우스만 뎀벨레와 오바메양 까지. 우승 트로피를 위해 팀을 떠났다. 마리오 괴체와 마츠 후멜스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뒤 도르트문트로 복귀했다. 동료들이 팀을 떠나는 동안 로이스도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 첼시, 맨체스터 시티 등 빅 클럽과의 이적설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로이스는 늘 이곳에서 새 시즌을 맞이했다.
 
“팬들은 내가 온전치 못했던 시간을 함께 견뎌 주었다. 이제 내가 보답할 차례다.”라며 지난 2018년 봄 도르트문트와의 계약을 2023년으로 연장했다. 로이스가 밝힌 재계약의 단순한 이유는 “팀과 팬을 위해 ”였다. 로이스는 코로나19로 재정 위기에 빠진 지역 소상공인을 위해 50만 유로(6억 8천만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현대 축구계에는 팀과 선수의 아름다운 이별보다 뒷맛이 좋지 않은 이적이 눈에 띈다. 프로 선수라면 해서는 안 될 ‘태업 ’을 의심받는 선수도 많았다. 팀을 떠난 뒤 도시 전체를 욕한 선수도 있었다. 본인은 재계약을 원했지만 단지 나이 때문에 팀에서 버려진 선수도 있었다. 2019년 AS로마는 다니엘 데 로시와 안 좋게 이별했다. 보드진은 로마에서의 은퇴를 원했던 데 로시에게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2018-2019시즌이 끝나고 로마를 떠날 것을 공식 발표했다. 팬들이 시위까지 했지만 보드진의 결정은 변함없었다.
 
축구를 보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역전승의 짜릿함이 좋아서 보는 이도 있을 것이고, 스타 플레이어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기 위한 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포츠가 주는 감동이 아닐까. 선수는 팬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프로팀은 좋은 성적으로 감동을 주는 것 이외에 팀과 팬들에게 헌신하는 선수를 존중함으로써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실력이 출중한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충성심까지 있다면 돈보다 팬들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축구가 단지 돈벌이에 그치면 안 된다. 마르코 로이스에게 더 많은 응원과 찬사를 보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AFC 피오렌티나) 331경기 203골 3도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AS 로마) 87경기 33골 9도움
 
프란체스코 토티(AS 로마) 786경기307골 197도움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710경기186골 131도움
 
다니엘 데 로시(AS 로마) 616경기63골 56도움
 
마르코 로이스(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66경기129골 82도움

[업코리아=정승우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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