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에 대한 신학적 맹신과 신앙적 양심
‘코로나 19’에 대한 신학적 맹신과 신앙적 양심
  • 이우윤 국민기자
  • 승인 2020.02.28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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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맹신에서 벗어나 신앙적 양심을 지켜야 -

 사회적 위험성에 대한 뉴스가 매스컴에 등장하면, 교계에도 그와 관련한 또 다른 뉴스가 유포(?)되곤 한다. 교계에서 비공식적으로 주장되고 떠도는 얘기이니 뉴스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SNS에서의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 그 비공식적 뉴스는 지진, 쓰나미 혹은 전염병 등의 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이다.’라거나 혹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니 걱정하지 말라.’는 등의 주장이다.

 이런 일은 이번 코로나 19’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었을 때에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중국이 기독교를 핍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중국을 심판하시는 것이라거나, ‘교회의 예배와 행사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 안전하다.’ 는 등의 뉴스(?)가 그런 것이다. 이런 뉴스는 목회자의 설교 혹은 개인적 고백 차원의 주관적인 것이지만, 거의 신학적 맹신이나 만용에 가까운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그런 신학적 맹신과 만용은 쉽게 검증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그것의 힘은 상당하다.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도 매우 크다. 의학적인 문제를 종교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신학적 맹신은 엄청난 사회적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또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책임이 수반된다.

 교회사를 연구하고 있는 권혁익 목사는 의학적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우리 교회사의 단면을 들려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우리나라가 대여섯 차례의 전염병 공습을 받았을 때, 당시 우리나라는 전염병을 귀신의 탓으로 여겼다. 의학적 지식이 매우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홍역이나 천연두 등의 귀신을 섬기는 사당을 마을 곳곳에 세워 두고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의학적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이 같은 접근은 전혀 효력이 없었다.

 이에 반해 당시 내한한 의료 선교사들은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해 의학적으로 접근했다. 물은 반드시 끓여먹고, 손과 입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선교사들이 의학의 힘으로 전염병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이겨내는 것을 본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이것은 한국 선교가 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14세기 중엽,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인구를 가지고 있던 피렌체에서는 흑사병으로 인해 전 인구의 삼분의 이가 죽었다. 그러나 피렌체와 비슷한 규모의 도시였던 베네치아는 흑사병의 경로가 동쪽인 것을 알아내고 해안에 방역 시스템을 확립했다. 동쪽에서 오는 배들을 무조건 정박시키고, 흑사병 균의 잠복기간인 40일이 지나기 전에는 베네치아에 입항하지 못하게 했다. 또 시내 곳곳에 치료소를 세워 환자들을 돌보았다. 당시에는 아직 일반적으로 전염병을 신이 내린 징벌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흑사병이 일반인이나 사제들을 구별하지 않고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신학적 맹신에서 벗어나 방역체계를 구축하는 대비책을 세워나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초기에 유대인들이 전염병의 피해를 적게 입은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병균을 옮겼다며 그들을 박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원인이 외출 후, 집으로 들어올 때 법규에 따라 손과 발을 씻는 그들의 독특한 습관에 있음을 알고서, ‘손 씻는 것을 경로추적이나 격리와 함께 전염병의 예방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런 교회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 교회는 코로나 19’와 같은 의학적 문제에 신학적 맹신이나 만용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자녀인 우리는 지켜주실 것이다.”라는 신학적 맹신은 신학적 만용과 아울러 사회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히려 신도가 함께 모이는 예배친밀성 있는 교제를 특성으로 하는 교회는 전염병이 급속히 전파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세에 전염병에 걸린 신자들을 자주 방문해야 했던 당시 사제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듯이 오늘 날의 종교인도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사제 혹은 목회자가 신적 보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적 만용을 부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이번 코로나 19’와 관련하여 교계는 의학적 문제에 대한 신학적 맹신에서 벗어나 의학에 근거한 사회적 책임을 진실하게 이행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두 주간 주일예배를 가정에서 드리기로 한 결정은 매우 합당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도시의 교회에서도 대구의 이번 결정을 참고하고 앞으로의 추이를 주시하여 위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학적 맹신에 빠지지 않는 것이요, 신학적 만용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19 감염의 근원지로 의심받고 있는 신천지코로나 19’와 관련한 자신들의 책임을 자각하고 당국의 조치에 진실하고 성실하게 협조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은밀한 포교로 사회적 지탄을 받아 온 신천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서 신앙적 양심에 따라 우리 사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신천지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들의 폐쇄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종교인으로서 신앙적 양심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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