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30주년 베트남, '도이 머이'정책으로 발전
통일 30주년 베트남, '도이 머이'정책으로 발전
  • 이장훈
  • 승인 2005.04.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中과 실리 외교 추진…정치 민주화와 시장 경제 적극 추진이 과제
“도이 머이 정책이 없었다면 베트남의 경제 성장도 없었다.” 4월 30일로 종전과 통일 30주년을 맞는 베트남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 중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던 배경은 바로 도이 머이(Doi Moi, 쇄신) 정책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시가행진을 하고 있는 베트남 군 병사들
북베트남(월맹)은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을 함락, 1960년부터 시작된 전쟁을 끝내면서 통일을 달성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은 해외 참전 사상 첫 패배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은 1976년 7월 통일 국가로 공식 출범했다. 베트남 공산당은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면서 철저한 공산체제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남베트남 출신의 하사관 이상 군인 수 백만 명은 집단농장에 수용돼 사회주의 체제와 혁명논리에 순응하도록 사상 개조 교육을 받았다. 또 미국 등 서방과 협력한 남베트남 정부의 전직 관리들과 기업인들은 대부분 숙청되기도 했다. 또 시장 경제 체제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때문에 자유를 찾아 베트남을 탈출하는 ‘보트 피플’이 양산되기도 했다. 베트남은 이처럼 통일 후 10년 간 경제 파탄과 사회적 무질서와 혼란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 베트남 군 의장대가 통일 30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결국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12월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 모이’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하면서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응웬 반 링 서기장은 이 회의에서 당시 인플레가 587.2%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6~1990년)을 통해 이를 억제하고, 대외개방을 통한 외국인투자유치 정책을 추진할 것 등을 결의했다.

도이 머이 정책 도입 이후 가장 혁명적인 조치는 농업 개혁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1988년 1월 토지의 소유권은 국가가 갖되 농민 개개인에게 장기사용권을 부여함으로써 생산력 향상을 유도하는 토지법을 제정했다. 이로 인해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던 베트남은 다시 쌀 수출국으로 변했다. 작물생산량은 토지법 도입 이듬해인 1989년에는 2,150만 톤으로 전년보다 200만t이나 늘어났다. 또 1992년에는 2,410만톤 생산량을 기록, 불과 4년 만에 460만톤이나 증가했다. 1990년 2억7, 000만 달러의 쌀을 수출한 베트남은 1999년 이후 10억 달러대의 쌀을 해외에 내다 팔고 있다.

또 1988년 외국인 투자법을 제정, 외국 자본을 대거 유치했다. 1988년 3억7, 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베트남에 대한 FDI(외국인직접투자)가 2004년에는 457억7, 000만 달러로 124배나 급증했다. 또 국영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 경쟁력이 없는 국영기업들 도태시키는 등 경쟁력을 강화했다.

   
▲ 시가행진을 하고 있는 베트남 군 병사들
이에 따라 베트남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986년 114달러에서 2004년 490달러로 4.2배 늘었으며 총 GDP도 1986년 70억3,220만 달러에서 2004년 393억840만 달러로 5.6배나 증가했다. 베트남 경제는 1991~2000년 10년 간 연평균 7.5%대의 성장을 기록했다. 2001년 이후에도 7.4%대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기준으로 1993년 현재 전체 인구의 58%가 절대 빈곤인구였으나 지난해 28%로 줄었다.

외교 분야에서도 베트남은 적극적인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는 1995년 7월 관계를 정상화했다. 2000년 11월에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종전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은 1979년 중국과도 전쟁을 벌였으나 1991년 국교를 다시 맺었다. 베트남은 또 1992년 과거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과도 국교를 맺는 등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의 4대 교역국 중의 하나다. 1995년 아세안에 가입한 베트남은 올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의 외교 전략은 과거사를 청산하고 어느 국가와도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나 중국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베트남은 개혁-개방과 실리 외교를 펼치며 통일 당시의 사회주의 이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도이 머이 정책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 고질적인 관료사회의 부정부패가 없어지지 않고 있으며 마약과 매춘, 밀수 등 사회문제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와 함께 도시지역의 실업률이 20%에 이르는 등 아직도 고용 창출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공산당의 일당 독재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등 정치 민주화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때문에 베트남이 제 2의 도약을 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추진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 다양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사회 여건을 조성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베트남이 가야할 길은 지난 30년 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업코리아, UP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