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어야 할 아름다운 공동체, '신장장애인 전남협회' 여수지부
우리가 만들어야 할 아름다운 공동체, '신장장애인 전남협회' 여수지부
  • 김영일 객원기자
  • 승인 2019.09.16 12: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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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는 장애인과 일반인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업코리아 여수=김영일 객원기자] 2010년 10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행복전도사 최윤희씨가 모텔에서 남편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 되었다. 최윤희씨는 행복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행복바이러스의 전파자였다. 그랬던 그녀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는 사실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하게 하였을까?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있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통증에 대해 우리는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녀가 고통을 참다 못하여 자살을 택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육신의 고통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쉽게 무너 뜨릴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육체의 고통이란 그만큼 절망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을 보면 원치 않게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 중엔  '신장장애인' 들이 있다.

신장장애인전남협회여수지부 김태환씨
신장장애인전남협회 여수지부 김태환씨. 업코리아

'저희들은 투석을 하거나 신장이식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너무많아 감당이 어렵고 직장도 가질 수 없어 행복한 삶이란 기대하기가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

신장장애인 전남협회 여수지부의 김태환 씨는 말한다.

신장장애인들은 평균 주 3회 투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투석을 전후하여 고혈압이나 빈혈 심장 마비등의 위험이 있고 몸의 움직임도 불편하다. 만약 이틀만 투석을 안 하면 몸의 수분이 과다해져 숨이 차고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이것은 종종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때문에 신장장애인의 경우 투석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병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여수시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장장애인들에게는 적절한 시설을 갖춘 병원마져 여의치 않다. 

수십년째 투석을 받아오고 있는 김태환씨의 팔 (사진:업코리아넷)
수십년째 투석을 받아오고 있는 김태환씨의 팔. 업코리아.

'신장장애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시설을 갖춘 병원이 성심병원이었는데 휴업을 하는 바람에 신장 장애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신장 장애인들을 위해 애를 많이 썼던 김유화 전 여수시원은 말한다.

김유화전여수시의원(사진:네이버)
김유화 전 여수시의원(사진:네이버)

여수성심병원이 재정난으로 인하여 휴업을 해야 했을때 신장장애인들에겐 매우 힘든 시간들이었다. 왜냐하면 성심병원은 신장 장애인들의 치료를 위해 가장 적절한 시설을 갖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심병원이 휴업을 하자 이곳저곳으로 자신들에게 맞는 병원을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그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당시에 김유화 전여수시의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름 노력했으나 불가항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장장애인들을 더 괴롭게 하는 것은 신장장애인 단체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시보조금이나 후원회비가 몇 년 전부터 끊기다시피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각별한 관심도 모자랄 신장장애인들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남도의회의 2015년 6월 9, 10일자의 자유게시판에는 Y모(사단법인한국신장장애인 협회 전남협회)씨의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다. 

‘K모 도의원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과 장애인 단체를 있지도 않은 보조금 횡령과 부정수급의 불법 영업함을 공론화하여 명예훼손을 한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고 억울하여 K모 의원의 공식적이고 진솔함과 정중한 사과를 받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보조금횡령과 부정수급 및 불법영업이라는 말도 안되는 K모 의원의 오만과 편견으로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

이 게시판의 내용에 의하면 현 K모 도의원이 신장장애인들의 보조금을 횡령과 부정수급 및 불법영업이라는 내용으로 크게 명예훼손을 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2015년 6월 10일자 ‘뉴스웨이’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전남도의회 K모(여수) 의원이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전남협회에 대해 전남도 감사결과에 대해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전남협회의 감사는 도의회 기획사회위원회가 지난해 보건복지국 행정사무감사에서 전남협회의 운영비 보조금 정산 부실과 집행부 관리감독 소홀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남에 따라 이에 대한 자체감사 등 강력한 시정 조치를 요구해 실시하게 됐다. 이에 따라 도 감사관실은 지난 4월 4-5일 이틀간 전남협회의 2013년도와 2014년도의 도비 보조금 적정 집행 여부를 집중 감사를 벌였다. 그 결과 전남협회가 보조금을 부정 사용했고, 심각한 보조금 회계처리 위배사항이 적발됐으며, 전남협회 운영비 중 집행 총액의 35%에 해당하는 2백50여만 원을 환수조치토록 했다. 또 전남협회 여수 지부는 1억3천6백만 원을 지원받은 장애인 활동지원 사업에서 부정수급이 밝혀져 지난해 여수시가 형사고발 조치, 현재 광주지방법원순천지원에서 임직원 등이 재판 중에 있다.

............ ‘

 여기서 보면 K 의원은 신장 장애인측에서 보조금을 불법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감사를 요청하였고, 이로 인하여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신장장애인협회 김태환 씨는 이렇게 말한다.

‘2013년 300만원 보조금을 임대료, 공공요금, 소급 처리분과 영수증을 간이영수증으로 처리하는 등 업무상 미흡함으로 인해 전액환수 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하게 쓴게 아니고 처음 만든 보조를 지원받는 협회에서 장부정리와 공문처리 및 영수증 처리를 잘 못해서 흔히 발생하는 정도의 사항 이었습니다.’  

 보조금 불법수령에 관한 문제는 2015년 12월23일 광주지방검찰청에서 혐의 없음으로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한번 불법으로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인식된 외적인 상황은 불법에 대한 판결이 무혐의로 끝난 후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즉 후원자들의 후원은 끊기고 게다가 2018년에는 여수지부와 중앙회 간의 협회장과 지부장 위촉문제로 인하여 법정싸움이 발생하면서 여수지부에서는 시 보조금 수령마져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사무실 운영마져 힘겨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본 기자가 신장장애인 여수지부를 방문 하였을 때 한전에서 나온 직원이 찾아 왔는데 몇 달동안 전기세를 내지 않아 전기를 끊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총 액수가 얼마인지 묻자 48,000원 정도 된다고 하였다. 사무실에는 집기류도 갖추지 못하였고, 전기도 끊길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 신장장애인단체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론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에서 온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실현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의식주가 안정적으로 확보된 토대위에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신장장애인들의 재정적 어려움은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위하여 해결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가 신장장애인들에게 관심을 보여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사람의 몸에는 약 70조개의 세포가 있다고 한다. 이 수많은 세포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구성되어 인간이라고 하는 몸을 이룬다. 그런데 이 수많은 세포 중에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생명력이라곤 느껴지지도 않는 발톱이나 손톱 마져도 우리 지체의 일부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같은 사회생활을 영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우리라고 하는 사회 공동체의 일부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장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건강한 사회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일부이다. 때문에 이들이 우리와 어떻게 연합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 사회인가의 척도가 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연합을 이끌어 낼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몇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사회복지제도와 관련된 공무원들의 전향적인 자세이다.    

본시 사회복지는 종교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면서 이러한 종교의 영역이 국가의 영역으로 옯겨져 왔다. 때문에 지금은 제도적으로 이러한 복지사회를 구축하려고 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에는 늘 맹점이 있기 마련이다. 특별히 행정은 문서로 말하고 문서로 응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장애인들에겐 매우 어렵다. 기실 정상인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문서를 다루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본 기자도 시의 후원을 받아 보려고 문서를 꾸미다가 너무 귀챦아서 포기해 버린 적이 있었다. 하물며 자신의 몸을 가누기도 힘든 장애인들이 문서를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신장장애인단체의 여수지부가 부적당하게 불법을 행한 것으로 간주되어져 재판까지 가게된 것이 좋은 실례다.  그런면에서 사회복지제도를 다루는 공무원들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공무원들은 자기들 편의대로 복지정책을 추구하려 하지 말고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복지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의 자세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장애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소한 문제를 트집잡아 복지실현을 장애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법이란 자연스러움이어야 한다. 공동체가 원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법의 문자적 적용은 게으른 공무원들의 나약한 변명에 불과하다. 법에도 감정이 있다. 이러한 감정은 법의 테두리 속에서 합리적인 방향전환을 가능케 한다. 그것이 복지제도가 복지제도 답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신장 장애인들의 경우는 그러지를 못했다. 결국 검찰에서도 무혐의로 끝날 사소한 것을 트집잡아 감사를 하고 지원금을 중단하는 사태를 야기하였다. 이것은 본래의 복지제도의 목적이 아니다. 사회복지제도는 장애인들을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와 결속시켜주는 최소한의 법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가 도리어 사소한 것들로 괴롭게 만든다면 이것이 어찌 공동체와의 연합을 추구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겠는가?  

둘째로 우리 모두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란 어느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척되는 것이 아닌 서로 마음과 마음을 함께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이다.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되어지는 가족체계이다. 이것은 이미 만들어진 사회속에서 이러한 인격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가면서 이러한 인격이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봉사활동을 시키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게 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때문이다.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론(사진:네이버)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론(사진:네이버)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론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은 생존에서 자아 실현에까지 위계를 거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위계는 차서대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삶속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고 하는 어머니 같은 공동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신장 장애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오늘도 투석으로 고통중에 있다. 비록 최윤희 씨와 같은 고통은 아닐지라도 끝없는 투석과 절망 속에서 생존이라는 것 자체 외엔 의미를 더하기가 매우 힘든 삶의 연속이다. 그러는 그들에게 생존의 의미가 아닌 삶의 의미를 주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길은 일반인들의 관심과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런면에서 이제라도 저들에게 관심을 갖자 그리함으로 저들과 우리사회가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자. 그럴때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와 그 속에서 생활하는 우리 모두는 한층 더 성장하고 아름다와지게 되어질 것이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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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2019-09-17 09:15:31
기사 잘 읽었습니다~ 다만 기사 내용 중에 정상인이라는 용어를 비장애인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