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글로벌스쿨 교사칼럼(15), 대한민국의 안녕을 위해
등대글로벌스쿨 교사칼럼(15), 대한민국의 안녕을 위해
  • 박진희 교사
  • 승인 2019.07.30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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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한용운 선생이 물어온다면, 그 물음에 필자는 이렇게 대답을 해야겠다.
사진출처 - 성북문화원
사진출처 - 성북문화원

지난 6월 성북동의 심우장에서 만해 한용운의 뮤지컬 <심우>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은 성북문화원에서 주최하여 매년 6월 열린다. 성북동 심우장(사적 제550호)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생애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심우장이란 이름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용운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남향집을 마다하고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 그리고 심우장은 일제 말기 유일한 조선땅으로 남겨졌다. 심우장 마당에 들어서면 한용운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한 쪽에 심겨져 있어서, 그가 남긴 민족애와 문학적 향취가 그윽하게 풍기는 듯하다.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어른, 학생,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든 세대의 관람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땡볕 자리가 불편할까 위에 차양막을 설치해 준 공연 관계자의 세심함에 감동을 받으며 공연장에 앉았다. 이 공연이 의미 있는 것은 한용운의 생가인 심우장에서 직접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심우장이 곧 무대가 되는 셈이다.

공연의 내용 역시 그 무대를 바탕으로 1937년 봄, 일송 김동삼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연의 나레이터는 한용운이 심우장에서 낳은 외동딸 영숙이다. 영숙의 시선으로 김동삼 선생이 옥사한 후, 한용운 선생이 그 시신을 어떤 심정으로 심우장으로 모셔서 장례를 치렀는지 간결하고 깊이 있게 전달해 주었다.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시는 일을 가지고 제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일제의 감시가 심한 상황 속에서 모실 수 없다는 의견이 강했지만, 한용운 선생은 김동삼 선생의 시신을 형무소에 그대로 둘 수 없다며 심우장으로 가지고 오는 것을 감행한다. 일제의 눈이 무서워 장례를 치르는 5일 동안 사람들의 드나듦이 소박한 모습을 보고 한용운 선생은 분개를 한다. 그 모습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뒤돌아 보며 같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 목숨과 삶을 내걸고 장례를 찾아오기 힘들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영숙이 아버지인 한용운 선생에게 100년이 흐른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가득 찰 것이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고 대화를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100년이 흐른 시점인 2019년 지금 우리는 심우장에 앉아있다. 그리고 100년전의 한용운 선생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한용운 선생은 앞에 앉은 관객 한 명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직접 이름과 안부를 묻고, 100년이 흐른 뒤 한국은 안녕한지 눈가가 촉촉해진 채 물었다.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강점기로부터 100년이 흐른 2019년의 대한민국은 과연 안녕한가. 100년 전 피를 흘리고 이 땅의 독립과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이 아깝지 않게 이 땅이 바르게 세워져 가고 있는가. 오직 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나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순수하게 투쟁했던 그 민족애가 과연 2019년 우리 국민들에게 있는가. 나는 선뜻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애끓는 심정으로 묻는 한용운 선생의 물음에 많은 관객은 조용히 눈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사진출처 - 성북문화원
사진출처 - 성북문화원

수업 시간에 필자는 가끔 학생들에게 묻는다. 우리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체적으로 학생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을 때나, 승리를 기원하며 함께 응원하면서 애국심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부정한 사회, 공평하지 못한 사회, 비난과 고성으로 얼룩진 정치와 불안정한 국가 정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피력한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님의 침묵’ 中​

일제 강점기의 조선에서 독립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가버렸지만, 한용운 선생은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역설적으로 그 독립을 보내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곧 다시 그 나라를 다시 되찾고 말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마지막 구절은 우리의 가슴을 세게 내리치는 듯하다.

그렇게 되찾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할까. 선조들의 피와 정신으로 되찾은 대한민국을 더 바르게 살아가도록, 정의롭게 만들어 가도록, 선조들의 정신이 잊혀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 깊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우리는 양 어깨가 힘겨워져야 할 것 같다.

“100년 후의 조선은 안녕한가…”

“지금은 안녕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도록 지금 치열하게 나아가고 있고, 그렇게 가르치는 중입니다. ”

100년 전 한용운 선생이 물어온다면, 그 물음에 필자는 이렇게 대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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