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시민사회와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공동체
성숙한 시민사회와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공동체
  • 김영일 객원기자
  • 승인 2019.07.2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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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민덕희 의원을 놓아주자.

물레방아 (사진제공: 네이버)
물레방아 (사진제공: 네이버)

 

나의 외가는 순천시의 삽재 팔동에 있다. 그곳을 가다 보면 삽재팔동 입구에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제분소하나 없던 촌 동네에 물레방아는 많은 역할을 했다.

나는 그 앞을 지나 가노라면 늘 물레방아가 신기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곤 하였다. 그런데 그 물레방앗간 위에 신작로길이 있었다. 그 신작로위에는 잔디밭이 있었는데 거기엔 매우 오래된 묘하게 생긴 길쭉한 돌이 하나 서 있었다. 그 당시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중 어른이 되어서야 그게 바로 남자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민족의 사유체계는 모든 것이 음양으로 규정된다. 陰은 습한 것이라 물레방아를 의미하고 물레방아는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음기가 너무 강하면 좋지 않기 때문에 그 음기를 중화시켜줄 양기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여성의 성기에 상응하는 남성의 성기를 맞은편에 세움으로써 氣를 중화시키려고 했다. 즉 성기숭배사상의 배경이다.

사실 상고사는 거의 性(sex)의 역사이다. 왜 이토록 성이 인류역사의 중심이 된 것일까?

한자어 性(SEX)을 파자하면 心+生이다. 갑골문을 보면 生이이라는 말은 씨앗이 싹터서 올라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이라는 말은 곧 마음이 性(SEX)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뜻이다. 굳이 프로이드의 말을 빌리지 않을지라도 이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도 性이 인격의 근간이라고 생각 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성은 단지 인간의 성품 형성에만 관여된 것은 아니다.

 갈라파고스 성에는 바람둥이 거북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한번은 이 갈라파고스에 거북이가 멸종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이 바람둥이 거북이가 암컷들을 유린하여 새끼들을 낳는 바람에 멸종을 면했다고 하니 때로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면 바람둥이도 필요한것 같다. 이때 性 은 종족번식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며 종족번식은 곧 생명에의 집착이기에 성에 집착한다는 것은 곧 생명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성이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정체계를 세우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쫒겨 난 이후로 수렵과 채취생활을 할 때에는 이동생활로 인하여 가정이라는 조직이 존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동굴에서 같이 생활을 함으로써 다부다처제로 공동체가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이부이처제로 바뀌고 종국에는 일부일처제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것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지켜야할 보편적 윤리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질문한다. 만일 일부일처제의 윤리이념이 자리잡고 있는 우리사회에 그렇다면 性적인 욕구도 이러한 윤리이념에 복종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한 욕망은 고대의 습성 그대로 인 것 같다. 다만 인간의 강한 이성이 이러한 욕망을 억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이러한 욕망이 돌출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소위 바람이다. 어찌보면 인간의 본래적인 성에 대한 욕망은 생래적인데 이성이 억압하고 있으니 인간으로써도 참 고역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러한 욕구를 억압 할 수 없어 은밀하게 분출시킬 자리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은밀한 욕망들이 들통 났을 때에는 자신의 가정에 파탄이 오는 것은 물론 사회지도층의 경우 평생을 쌓아온 명예가 한 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불편한 성행위가 들통이 나는 경우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이 사실을 부인하거나 혹은 권력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권력을 총동원하여 사실을 은폐시키려고 한다.

얼마전 세간에 떠들썩했던 윤중현씨나 김학의 씨 혹은 장자연 사건들이 그러한 사건이다. 어디 그뿐이랴 2016년 1월 여수에서 발생한 성 접대부 사망사건에서도. 올 초 고흥수협이사들의 필리핀에서의 성매매 사건역시 이러한 권력으로 본질을 덮어 버린 사건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지도층의 성윤리가 명예와 관련되어 감추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또다른 이유에서 이러한 무너진 성윤리를 감추려고 하는 시도들도 있다.

2006.12.09일자 경북의 cbs기사에 의하면 친모의 동의하에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수년동안 성폭행한 사건이 기사화 된적이 있었다. 왜 친모는 자신의 딸이 재혼남편에게 성폭행 당한 것을 묵인한 것일까?

이러한 것을 문지방 섹스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은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즉 이런 사실이 밖으로 세어나갈 경우 가족이 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이러한 범죄를 묵인하게 하는 것이다.

특별히 여성들의 경우 이러한 욕구는 더 크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도 배우자의 성범죄에 대해 눈을 감고 심지어 감추어 버리려는 경향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죄를 감추려고 하는 의지보다는 어쩌면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다.

민덕희여수시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사진제공:여수넷통뉴스)
민덕희여수시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사진제공:여수넷통뉴스)

 요즘 여수시민단체들이 민덕희 의원의 제명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십여년전 복지관의 국장으로 재직당시 원장과 직원 사이에 발생한 성폭행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를 회유 교사 했다는 이유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던 본 기자가 민덕희 의원을 만나 보았다. 인터뷰 중에 몇 번이고 눈물을 훔치던 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당시에 나는 그 사건이 너무나 당황스럽고 두려웠어요. 매일같이 복지원이 신문지상에 드러나고 원생들이 이것을 볼 때 받을 충격과 수치심은 어쩌나 하는 두려움들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때 오직 내 마음은 빨리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민의원의 말에 의하면 당시만 해도 복지관의 사정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원장과 직원사이에 발생한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원장은 이미 리더쉽을 상실해 버렸고 당시 복지관의 국장이었던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그러는 그녀의 입장에선 복지관의 원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감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민덕희여수시의원(사진:업코리아)
민덕희여수시의원(사진:업코리아)

'생각해 보면 그때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제 자녀가 백혈병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다 사건이 터져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없었고 정말 당혹스러운 시간들이었죠.  내 인생에서 기억을 비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이었습니다.‘

 민의원의 말을 백프로 신뢰 할 순 없다 해도 한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가정과 다름없는 복지관과 자녀들인 원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다말이라는 여인이 나온다. 그녀는 믿음의 조상인 유다의 세 아들 중에 맏형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러자 당대의 관습에 따라 둘째아들과 재혼을 하였다. 그런데 둘째아들도 아들이 없이 죽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셋째아들이었다 그러나 세째 아들은 아직 어려서 결혼을 할 상황이 어니었다. 그래서 유다는 며느리를 잠시동안 친정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다말이 친정으로 온지 여러 해가 지나고 셋째아들이 어른이 되어도 유다는 셋째 아들을 며느리 다말과 결혼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다가 다말이 있는 곳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다말은 창녀의 복장을 하고 시아버지를 길에서 맞이하고 동침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시아버지는 그 창녀가 며느리라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 때 시아버지와 동침한 며느리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사실이 유다에게 알려지자 유다는 다말이 간음하였다고 불에 태워 죽이려고 하였다 그때 다말은 비로소 자신이 시아버지와 동침한 창녀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유다가 말한다.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이것은 참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어떻게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임신한 며느리를 의롭다 할 수 있을까? 고대로부터 가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가문을 세우는 것은 그 가문에 소속된 사람들의 공동책임이었다. 그리고 이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를 잇는 일이었다. 그런데 유다는 자기아들이 죽어 집안에 대가 끊길 판이었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하여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침하는 수치를 무릎썼던 것이다. 그렇기에 유다는 그런 며느리를 향해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바로 이 다말의 후손에게서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나오시고 다말은 영원한 믿음의 여인이 되었던 것이다.

 민덕희 의원 제명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결국 7월 24일 민주당에선 그녀를 제명 하였다. 그녀가 행한 잘못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뒤집어 보면 복지관과 원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심정도 헤아려 봄이 옳지 않을까?

  세상은 법에 의해 유지된다. 그러나 법만으로는 유지 될 수 없다. 때로는 자기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어미의 근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우리네 어머니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민덕희 의원에게서 이러한 어머니의 근성을 말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제 그만 민덕희 의원을 놓아주자. 지나온 십여년의 생활동안 그녀는 충분히 고통을 받은듯하다. 비록 복지관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나 잘못되어진 일에 대해서 그만큼 고통스러워 했다는 것으로 그녀가 받아야 할 벌은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남은 임기동안이나마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어머니의 심정으로 시민들을 위하여 봉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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