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탱고기지를 찾아간 속뜻은?
라이스, 탱고기지를 찾아간 속뜻은?
  • 이장훈
  • 승인 2005.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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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핵 해법으로 당근과 채찍 사용…주권국가 지칭
▲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20일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근이냐 채찍이냐.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제시한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눈에 띠는 대목이 있다. 라이스 장관은 지난 19일 일본의 조치(上智) 대학 연설에 이어 20일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이 주권국가라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을 주권국가로 공식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라이스 장관이 지난 1월 상원 외교관계위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비난했던 때보다 상당히 진전된 발언이다. 북한이 그동안 미국이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기 때문에 6자 회담에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6자 회담 복귀를 위한 명분을 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라이스 장관은 “(주권국가 발언은) 그냥 만든 것이 아니고 심사숙고한 끝에 발표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라이스 장관의 '주권국가' 발언에 대해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좋은 발언”이라며 “북측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철회하라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직접 언급하기는 어려운 것이고, 우회적으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한 얘기”라고 말했다.

북한이 주권국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엔회원국이며 6자 회담에서 협상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반복적으로 의도적으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말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북한이 전략적 선택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면 6자 회담 안에서의 안정보장 조처 구상을 제시해 왔다. 또 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에너지 문제에 대해 검토할 용의가 있으며, 연료를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6자 회담 밖에서 곤경에 처한 북한 주민을 위해 식량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6자 회담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존경과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제시되기를 바란다. 물론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다자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의 길을 계속할 것이다.

라이스 장관은 또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면서 “북한은 전략적 선택을 통해 안전보장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MBC〉방송과의 회견에서 “6자 회담 틀 안에서 북한이 전략적 결정을 한다면 안보와 관련해 문서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KBS〉방송과의 회견에서 전략적 선택과 관련, “첫 단계는 북한이 6자 회담에 들어오는 것이며, 핵 야심을 포기하고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등 모든 핵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고 그 다음에 검증 조치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함과 동시에 6자 회담 내에서 북한의 모든 우려사항을 논의할 수 있으며 회담 틀 안에서는 북미 양자대화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라이스 장관의 이 같은 유화적 발언에 대해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20일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미국이) 김정일 체제를 무엇보다 우선하면서 북-미 공존을 요구해 온 북한에 당근을 제공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정일 체제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서 북한의 공포를 누그러뜨려 6자 회담에 복귀하게 하려는 의도와 북한과 미국에 ‘유연성‘을 요구한 중국의 요청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북한에 대해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분석했다.

끝없이 인내할 수는 없다”... 대화 노력 계속하되 거부하면 압박도 고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당근만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북한의 6자 회담 복귀 시한에 대해 “인내심에 마감 시한은 없으며 외교는 마감시한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끝없는 인내심을 가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은 이에 대해 미국의 이런 유연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6자 회담 재개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 또는 북한을 제외한 5자 회담 개최를 제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성의’에도 불구, 북한이 6자 회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채찍’을 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한다. 이번 순방도 북한이 6자 회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한 ‘명분 쌓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 여유를 줄 것인가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일본 〈교도〉(共同)통신은 지난 18일 “라이스 장관의 아시아 순방(16~21일)이 끝날 때까지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회담 이외의 방안을 선택하라’는 의회 등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한중일 정부에 통보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이처럼 촉박하게 데드라인을 잡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은 지난 16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북핵 관련 세미나에서 “북한이 6월까지 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넘길 것”을 제의한 바 있는데 회담 복귀 시한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처음이다. 때문에 ‘마감시한’이 대체로 이 때가 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라이스 장관이 귀국하면 ‘북한을 언제까지 기다릴 것이냐’는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될 것이며 이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의사 타진을 위해 고위 인사의 추가 방북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북한이 데드라인까지 6자 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어떤 대북 압박을 할 것인지도 역시 주목된다. 대북 압박 방안으로는 경제제재를 염두에 둔 유엔 안보리 회부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감시와 단속 강화 등이 뒤따를 수 있다.

美고위 인사로는 최초로 탱고기지 방문...北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

이와 관련, 라이스 장관이 지난 19일 방한한 후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한미연합사 지휘통제소(TANGO·탱고)였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날 오후 5시 35분께 전용기 편으로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라이스 장관은 간단한 환영행사를 마치고 UH-60 블랙 호크로 서울 외곽 지하에 마련된 탱고에 오후 6시 10분께 도착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들이 전방을 시찰하기는 했으나 지하 벙커를 찾은 것은 라이스 장관이 처음이다. 한미연합사도 탱고를 국내외 언론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라이스 장관의 탱고 방문 목적은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을 하고 있는 한미 양국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라이스 장관을 수행한 한 고위관리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라이스 장관이 탱고를 방문한 것은 북핵 문제에 대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밝혔다.(3월 20일자 보도)

라이스 장관은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즉석 연설에서 “한국은 민주주의를 이룩한 가장 모범적인 나라인 반면, 북한은 정반대의 국가로 알고 있다”면서 “북한은 위협적인 국가로 어려움과 곤경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자유의 전선 앞에서 수고하는 여러분들의 노고는 곧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노력과 같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스 장관이 이곳을 찾은 것은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능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북한에 대한 대화재개 압박 효과를 노리는 것이면서 분석했다. 라이스 장관의 한 보좌관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6자 회담 불응에 인내심을 점점 잃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할 점은 라이스 장관이 북한에 대한 인식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을 주권국이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 역시 폭정의 전초기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라이스 장관은 일본 조치대학 연설에서 “북한의 참상과 정권의 본질, 인근 국가의 무고한 시민에 대한 납치사건, 핵 무장화를 통한 지역안보에 대한 위협을 미국과 다른 민주사회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과 미얀마를 비롯한 아·태 지역의 민주화가 촉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한 라이스 장관의 북핵 해법이 어디에 무게의 중심을 두고 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한가지 라이스 장관이 공을 북한에 넘긴 것은 분명하며, 북한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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