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지배하는 사회
분노가 지배하는 사회
  • 김정수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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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심리로 보는 한국사회 (4)
20세기 초 서양인의 눈에 비추었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빛바랜 흑백사진속의 이미지일 뿐 사실 한국은 아주 활발하며 역동적인 사회이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지면 에너지가 많은 사회이다. 땅도 좁고 자원도 부족하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하고 열정적인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최대 자산이다.

삶을 향한 한국인의 에너지는 고난의 역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에너지가 생성되고 분출되는 과정을 통하여 한국사회는 갈등이 생기고 또 해결되면서 발전하여 왔다. 최근에만 해도 6월 항쟁, 월드컵과 거리응원, 촛불시위를 통하여 거대한 에너지가 발산되었고 세계가 놀랄만한 에너지의 힘을 확인하였다. 실로 거대한 에너지의 나라 한국.

한국의 에너지는 과연 무엇인가? 한국적 에너지의 특성으로 기저에 한(恨)을 가지고 있으며 감성적인 부분이 많고 민족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사회 내부의 모순은 한을 통하여 분출되고 해결되었으며, 문제의 근원이 외부에 있을 때 한국의 에너지는 더욱 강해지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에너지의 속성은 많은 역사적 시련 가운데 민족이 존재할 수 있게 하였지만 에너지의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며 다소의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약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최근 NEIS를 둘러싼 교육현장의 대립, 노동현장의 파업, 여야간의 대립, 집권당 내부의 대립, 언론과 정부의 대립, 부안군수 구타사건, 문화계 인사의 대립 등 너무 많은 사회 영역에서 대립과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생각의 차이에 따른 의견의 대립과 해소과정은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며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변화의 시대에 당연히 지나야만 하는 과정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대립의 에너지가 분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서로의 입장이 있을진대 상대의 생각과 입장은 철저히 무시되고, 상대는 틀렸으며 나만 옳다는 식의 독선적 선(善)만 존재한다.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표현에서 공격성이 두드러지며 투쟁만이 올바른 행동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상대방이 100% 틀렸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는 공존과 통합과는 양립할 수 없는 감정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토록 절대선과 절대악 만이 존재하는 것인가? 왜 이리 우리는 분노의 노예가 되었을까? 먹고 살만한데도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일까?

분노의 뿌리는 심리적 상처와 좌절 그리고 탐욕이다. 임상을 통한 관찰 결과 특히 어린시절의 상처는 일생에 많은 영향을 주는데 특히 분노에 민감한 인격을 형성시킨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건국초기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어린 시절에 남다른 상처를 가진 나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가 아물도록 돌볼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하였고 상처는 우리도 모르게 마음과 생각 속에 깊게 파여져 남아있고 분단이라는 현실은 상처를 지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개발독재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많이 성장하였지만 한편으론 상당한 좌절을 경험하였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는 듯한 빈부격차, 사회적 불평등, 시스템의 비민주성은 많은 이들을 좌절케 한다. 최근 시장논리를 넘어선 과도한 부동산값 상승과 한탕주의, 정치적 후진성, 도덕성을 상실한 세태의 모습은 좌절을 넘어서 분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자극이다. 우리 내부의 탐욕도 때로는 분노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일정한 사회경제적 성취를 이루었으며, 최근 들려오는 합리적 사고와 중도적 대안의 목소리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양극단의 사고를 철저히 배격하고 분노를 넘어서 성숙된 의사표현을 하는 집단이 인정받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 또한 선량한 이들을 좌절하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수긍할 수 있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국가적, 사회적 목표와 비전이 제시되고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보게 되는 인격장애 중에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라는 것이 있다. 자기 정체성(Identity)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분노가 두드러지고 대인관계는 불안정하며 분열되어 있고 흑백논리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경계성 인격 환자들은 어린 시절 정서적 충격이나 외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자신도 모르게 인격장애와 같은 문제를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의 괜한 직업병이기를 바래본다.

김정수 (클리닉 비(Vie) 원장, 정신과 전문의, 전 카톨릭대학교 정신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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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정 2003-09-17 11:08:00
심리현상으로 사회문제를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작금의 부정적인 사회적 감정을 객화하여 우리를 보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 기사입니다. 김정수 원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