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젤예’ 가족주의는 사회적 역량과 소비 단위로서...
‘세젤예’ 가족주의는 사회적 역량과 소비 단위로서...
  • 박진환 기자
  • 승인 2019.05.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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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업코리아=박진환 기자] 가족주의는 사회적 역량과 소비 단위로서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와 대척점을 이루지만 개발도상국으로서 한국 사회 성장의 근간이 돼왔다. 따라서 주말 드라마는 부성애와 모성애를 통해 가족과 사회를 지탱하는 힘으로서 부모의 권위 회복과 가족주의의 강화를 유도해왔다.

이처럼 희생하는 부모를 내세워 해체된 가족주의를 회생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온 주말 드라마가 부모와 자식 관계를 ‘따뜻한’ 복종으로 묘사해온 관행을 뒤집기 시작했다. 마치 자폭하듯 현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지켜내려는 가족주의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조목조목 입증하는 상황들은 결국 가족주의의 승리라는 뻔한 결말을 예상함에도 과정상의 새로운 변화가 흥미롭다.

KBS2 주말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하 ‘세젤예’)의 지난 19일 방영분에서 시어머니 하미옥(박정수)에게 맞선 며느리 강미선(유선)의 반기가 보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져 마음 놓고 웃지 못하게 했다.

고부 갈등으로 단순화하기에는 이들의 대립은 슈퍼맘을 강요하는, 육아문제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권력집단이 주도하는 현 사회의 이기적 단면을 정곡으로 파고들었다. 이를 통해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와 이로 인해 한국 사회가 지켜내고자 했던 가족주의가 해체되는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렸다.

시어머니 미옥은 사돈인 박선자(김해숙)와 한바탕 언쟁을 벌인 후 손녀를 양육하면서 며느리 미선에게 퇴근 시간 엄수와 육아 비용을 요구했다.

미옥을 이기적 시어머니로 묘사하는 듯한 뉘앙스이지만 노년에 조차 육아 문제에서 해방되지 못해 골병들어 고생하는 실버세대의 대변자로서 미옥의 당당함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미선 역시 육아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을 엄마에게만 전가하는 사회에 반기를 듦으로써 ‘직장맘’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선은 미옥이 며느리도 딸이라는 말로 그간의 다소 억지스러웠던 행동을 피해가려 하자 “저 어머니 딸 아닌데요. 어떻게 며느리가 딸이에요. 며느리는 며느리에요. 어머니 불리할 때만 딸인가요. 어머니 불리하실 때만 제가 딸이에요”라며 남편과 자신을 차별했던 상황을 조목조목 댔다. 이어 “저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어머니. 특히 어머니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 받아요”라며 그간 쌓인 설움을 풀어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목소리를 높이는 미옥에게 “왜 또 소리는 지르세요. 왜 툭하면 소리부터 지르세요. 누군 뭐 소리 못 질러서 이러고 있는 줄 아세요”라며 똑같은 방식으로 응수했다.

이는 부모를 향한 버릇 없는 반항이라기보다 슈퍼맘을 강요하는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는 항변이다. 미옥 역시 슈퍼맘을 강요하는 사회의 희생자였지만 그 역시 동일한 가해자로 뒤바뀌었다.

미선의 항변은 부모가 더는 절대 복종의 대상이 아님을 묘사하고 있다. 부모 권위 실종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제일 먼저 떠오를 수 있지만 실은 명분 없는 권위의 무력함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미옥의 오류는 퇴근 시간 엄수와 양육비 요구가 아니라 미선의 주장한 바대로 며느리와 아들을 편의상 잣대로 차별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모로서 이기심은 시간적 금전적 압박이 아닌 자신의 권리 주장을 며느리에게만 요구한 행위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육아 문제를 부모와 조부모들에게만 전가하는 현 사회의 무능력과 이기심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세젤예’는 가족주의의 진부함이 초래한 부정적 이면을 들춰내는데 끝나지 않고 공동체로서 가족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한국 사회의 축을 이루는 소위 지도층이라고 하는 권력집단의 무능력한 일면을 슬쩍 고발한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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