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
  • 성숙진
  • 승인 200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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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진 (한신대학교 인간복지학부 교수)
조기 유학, 이민 현상 뒤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말들이 교육이고, 그리고 살기가 너무 힘들고 인간관계가 너무 피곤한 나라라고 한다.

조기 유학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체계적 실증 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다.

따라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한 다소 주관적인 견해를 쓸 수밖에 없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과연 교육 이유를 들어 떠나는 사람들에게도 과연 과열 입시, 살인적 사교육비 같은 문제만의 연유로 떠나려 하는 것일까 라는 것이다.

비교적 안정적 직장을 가진 한 30대 맞벌이 부부가 이민을 떠났는데, 그 아내는 뇌졸증으로 장애를 입은 시어머니의 수발 책임을 다른 형제에게 떠맡기게 된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또 다른 경우는 가족에게 폭군으로 군림한 아버지로 인해 급기야 큰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말을 자주 하자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들을 조기 유학 보냈다고 했다.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했던 한 가족의 경우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이가 하나 있는데 캐나다에는 나중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약간의 재산을 기증하면 그 아이가 평생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떠나려 한다고 했다.

30대 40대들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이민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최근 대기업의 이사를 한 후 명퇴를 당한 40대 후반의 미국 공학박사 출신은 이젠 자신이 평생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교사가 되어 시골의 학교에 내려가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나이 제한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는 꿈을 접었다고 했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은 후 사회복지 분야에서 돈은 많이 받지 않아도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중년의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의 진로 개척을 위해 대학원에 가끔 온다. 하지만 문제는 복지기관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은 잘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 제한이 없는 미국에서는 인생에 여러 번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에 반해 한국에서는 곳곳에 존재하는 나이 차별 정책으로 인해 젊은 날 한번의 도박 같은 인생의 진로 결정으로 삶이 결정된다. 이런 연유로 대학 입시에 죽을 판 살판 매달리게 되며, 또 30대 이후에는 앞으로의 인생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미국 의과대학 진학자의 10% 이상이 40대 이상인 것에 비해, 한국은 40만 넘으면 인생의 모든 통로가 막힌, 마치 인생의 종점에 온 듯한 심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서로 관계없는 듯한 위의 사례들을 언급한 연유는 실제로 “교육 문제”라는 이유로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상 뒤엔 더 복잡한 여러 연유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또한 우리 사회문제를 볼 때는 한두 가지의 변수로만 보려하지 말고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하려는 의도이다.

교육을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의 일상사 뒤에는 가족간에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부족, 지나친 의무와 강요의 정서로 인해 얽히고 설켜 엉망으로 변해가는 가족 관계, 정신질환이나 신체장애를 가진 가족과 병든 노부모를 위한 복지서비스 체계 미비, 나이 차별로 인해 인생에 여러 번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취업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진보니 보수니 논란이 많지만 모두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옆만 돌아보면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의 답이 바로 보일 텐데 말이다.

한 사회의 정책 기조는 경제 성장 정책과 동일한 비중으로 사회 성원의 생로병사 문제를 해결해가려는 것으로 엮어져야 한다. 여성의 취업률이 선진 산업국 수준으로 근접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결정자들이 생로병사 과정에 있는 가족 성원을 가족이 전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이상의 경제 성장도 불가능 할 것으로 여겨진다.

상식적으로 본인들의 경험을 생각해보라. 장애를 가진 노부모가 있을 경우 그로 인한 가족 성원간의 갈등, 걱정, 보살핌의 노력으로 인한 축적된 피로의 상태로 일터에 나가 얼마나 일에 집중하고 생산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인간이라면 생로병사의 과정을 완전히 피해갈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사회 안전망 부문에서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 따라서 부모들은 그저 막연한 불안감에 자식들이 좀 더 나은 대학에 가면 그래도 뭔가 낫겠지 라는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 보다 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식들이 이 나라보다는 더 나은 선진국에서 교육받고 거기서 자리 잡으면 낫겠지 싶은 것이다. 나아가 전 가족이 복지제도가 더 잘되어있다는 호주나 캐나다로 이민가면 좀 낫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인간관계가 너무 피곤하다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어떤 사회이든 직업상 고숙련에서 미숙련까지 서열이 존재한다. 합리적인 서구 사회에서는 의사결정권이나 봉급 등으로 그에 적절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만 차별화되는데 반해 한국 사회에서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힘을 가진 입장에 서는 사람은 서열상의 아래 사람에게 봉건시대의 하인처럼 대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서구 대학에는 없는데 한국 대학에는 있는 관습을 보면 학생들이 교수 과자 사오는 심부름하고, 라면 끓이기도 하고, 환갑잔치, 사은회, 스승의 날도 챙겨야 하고, 박사학위 논문심사 때 식사대접도 해야 하고, 정당한 보수도 받지 않은 채 교수를 대신하여 번역도 하고 연구도 한다. 학비를 내고 교육 서비스 받으러 온 학생들이 교수를 완전 상전 모시듯이 해야 하는 관례가 곳곳에 심심치 않게 존재하고 있다.

또 군인 사위를 맞은 한 부인은 딸이 최근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대대장이 새로 왔는데 부하군인 아내들이 전부 그 집에 가서 종일 일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데 대대장 부인이 “한 열흘은 푹 쉬라”고 하더란다. 앞으로 얼마나 일을 더 시킬지 부하군인 아내들이 경악을 했다고 한다.

공적인 영역에서조차 나이, 성별, 직위, 학번이 거론되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또 서열의 우위에 위치한 사람들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이 해야 할 온갖 허드레 잡일을 아래 사람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문화에서 살고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가져야만 무시당하지 않고, 강요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인간관계가 피곤한 한국 사회에서 자식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이민가서 한국에서보다 더 강도 높은 노동일을 하며 살아도 마음은 편하다는 이민자들의 말에 정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복지서비스 확충을 이야기하면 항상 돈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 산업에 일년에 24조원이 투입되고, 매매춘에 관련된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34 만명 정도, 실제 120 만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구 사회와 비교할 때 복지, 의료부분의 재정 투자도 부족하지만 인력 면에서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인데 성산업으로 들어가는 돈을 복지, 의료분야로 전환시키고, 매매춘 쪽으로 빠져 들어가는 인력을 복지, 의료 쪽으로 전환할 것인지 정책 수반자들의 피나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이미 고령화 사회의 문턱에 들어선 현 시점에서 말이다.

이와 맞물려 너무나 중요한 것이 나이 차별 관습의 종식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만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중년 세대에 대한 재교육의 중요성을 다른 나라들은 무척 강조하고 있는 시점이다. 미래에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한 현재의 준비 노력인 것이다.

인생에 기회가 여러 번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회가 되어야만 정체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며, 개개인들도 성장하고 새로운 인생을 계획해 보려는 동기부여를 갖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 나이 차별의 종식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학교, 군대 등 여러 공적인 조직에서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부당한 강요나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익명으로 그러한 부당한 관행을 고발할 수 있는 고충센터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기 유학이나 이민 현상 뒤의 복잡한 이유들 중 몇 가지만 짚었지만 이런 부분들부터 시정되지 않는다면 조기 유학이든 이민이든 기회가 닿는다면 한국 사회를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여겨진다.

성숙진 (한신대학교 인간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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