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길의 공화주의(5)]스스로 역사의 제물이 되다.
[정준길의 공화주의(5)]스스로 역사의 제물이 되다.
  • 정준길 변호사
  • 승인 2015.10.20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는 자기 성공을 제물로 삼는다.
▲ 광진구 걷기대회에 참여한 연세무척나눔병원 제진호 원장(왼쪽에서 일곱번째)과 직원들과 함께 새누리당 광진을 당협위원장 정준길 변호사(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스스로 역사의 제물이 되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개발도상국 중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하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에 진입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너무 큰 성공 때문일까요? 산업화의 성공이 국민에게 공기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산업화에 대한 역사적 업적에 대한 평가가 날로 빛이 바래지고 있다는 역설을 느끼게 됩니다. 심지어는 집권여당 내부에서도 산업화 성공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는 듯 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루어 낸 산업화는 우리의 현재와 밝은 미래를 가능하게 한 초석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바라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에 대한 평가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에 대한 시각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습니다.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구해낸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성장 업적을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폄하하고, 그 공로에 대해서는 눈꼽 만큼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 뿐입니다.

혹자는 산업화는 국민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거둔 성과, 즉 노동력을 착취해서 얻은 것이므로 그것이 어떻게 박정희의 업적이냐? 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관점이라면 그 어떤 지도자의 업적도 인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5·16과 박정희가 없었어도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역사적 과업을 달성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민주당 정권에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었다는 것이 이 주장의 근거입니다.

민주당 정권이 경제개발 계획을 작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산업화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계획을 실천을 통해 현실로 만들어 낸 점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로버트 배로(Robert Joseph Barro) 교수가 1994년에 발표한 ‘민주주의는 성장을 위한 처방인가’Democracy: A recipe for growth 라는 논문 내용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택한 선산업화 전략이 참으로 혜안이었으며, 이는 누구라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100여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실증조사에 의하면 오직 선 경제 발전-후 민주주의 노선을 선택한 나라들(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만이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병행 추진한 나라들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실패했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처럼 선(先)민주화 전략을 택한 나라들 역시 민주화와 경제성장 모두 실패했습니다.

배로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측면에서 큰 성취를 이룩한 국가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민주화되어 가는데 비해, 생활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민주화된 나라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자유를 잃어간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이를 기초로 산업화 초기의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경제발전을 통해 중산층이 두꺼워지고 도시화가 진전되어야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수출주도의 고도성장전략은 선진국 쪽에서 전수받은 게 아니고 군사정권이 창안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국제경제기구에서는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었던 쌀 생산에 치중해야 한다고 권고해왔으나, 군사정권은 이 권고를 무시했습니다.

이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혹시라도 부유한 쌀 생산국이 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산업화에 뒤져서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수출업종을 전략적으로 선택하여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개발 초기 국면에서 있어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사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양립이 불가능하며, 산업화 없는 민주화 또한 불가능함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개발국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전략이 난무하던 시기에 다수 국가가 선택했던 산업화와 민주화 병행론, 선민주화론, 수입대체화를 통한 경제발전 등과 같이 잘못된 길을 택하지 않고 선산업화라는 올바른 길을 선택한 것은 바로 혜안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산업화는 말처럼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역사의 과정입니다.

역사학자들은 1923년 터키 최초의 공화국을 세우고 정교분리를 택한 케말파샤의 쿠데타, 1952년 왕정을 폐지한 이집트 나세르의 쿠데타와 더불어 박정희 쿠데타를 역사상 성공한 3대 쿠데타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케말파샤와 나세르는 공화정을 건설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산업화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반해 박정희 전대통령의 쿠데타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조직화된 엘리트였던 군을 중심동력으로 삼아 성공했을 뿐 아니라, 쿠데타 이후 수출입국 정책을 통해 농경사회인 대한민국을 향후 30년간 연 10% 이상 성장하는 산업사회로 만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진보적 지식인인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님도 박정희의 산업화 관련 업적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박 전 대통령식의 경제 개발은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유공자이며 경제성장을 이룩하지 못한 다른 나라 독재자가 많다는 점과 한국처럼 극적인 성장을 이룩한 일은 더욱이나 드물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을 경제성장의 유공자라면 유공자로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선산업화라는 올바른 길을 선택했고, 안팎의 집요한 반론과 흔들기에 불구하고 수립된 자기전략의 일관성을 꿋꿋하게 밀어부쳤던 것입니다. 그 시기에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역사는 자기 성공을 제물로 삼는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분 전직 대통령은 시대적 제약 속에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보다 중요한 가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중요한 가치를 유보한 당시의 결정에 대해 후세의 입장에서 사후적으로 볼 때는 그 분들의 결정에 부족함과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돌이켜보면 이승만과 박정희, 두 분 전직 대통령은 모두 스스로 이룩해놓은 성공의 제물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 초등학교 공교육이 실시되는 사회를 만든 이승만은 결국 교육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배웠고 이를 현실속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국민들에 의해 부정선거를 계기로 권좌에서 쫓겨났습니다.

경제성장으로 국민의 먹고사는 기본 문제를 해결한 박정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는 국민들에 의해 그 역사적 역할을 다하며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 과정에서 형성된 자영농은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산업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산업화를 통해 축적된 거대한 사회 경제적 저력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김종필 전 총리의 말이 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주변의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오로지 역사적 사명감만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여 결국 의미있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국민은 냉혹했습니다. 일정 시점에 이르러 시대적 과제가 해결되자 자기 할 일을 마친 지도자들을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버렸습니다.

한국 보수주의의 근본적 특징

스스로 이룩한 성공의 희생자가 된 두 전직 대통령을 보면서 한국보수주의만의 특징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구의 보수주의가 지키려했던 것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 중 역사와 전통으로 정당화되는 “회고적 현실(retrospective reality)”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세력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미래목표로 정당화되는 “전망적 현실(prospective reality)”이었습니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종교 및 권위 등으로부터 찾을 수가 없었고, 자유민주주의 선택 및 발전, 근대화라는 변화를 추진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즉 한국의 보수세력은 서구의 보수세력과 달리 자유민주주의, 산업화 등과 같은 “전망적 현실(prospective reality)”을 통해 목적론적인 정당화를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세력은 현재의 진영논리상으로는 보수이지만, 당시 역사적 과제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주체세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질적으로는 진보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보수세력은 이러한 진보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오래지 않아 심각한 자기모순에 직면합니다.

지켜야할 ‘자유민주주의’는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미래완료형의 과제로 남아있고, 북한과의 체제대결 과정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를 마치 실현된 것인 양 사회주의의 공세로부터 지켜야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체제수호를 위한 반공정치를 권위적으로 수행하면서 자유민주적인 국민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제약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자기모순에 직면한 것입니다.

건국시기의 보수정치는 건국초기의 혼란과 국제전쟁으로 비화된 6.25전쟁을 겪어내며 대한민국을 지켜냈습니다. 국제감각이 뛰어난 이승만 대통령의 지도력으로 마침내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체제수호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런데, 체제수호의 문제가 해결되자 민심은 다른 쪽에 관심을 가집니다. 지금까지 반공권위주의적인 보수정치에 너그러웠던 민심은 체제수호에 성공하자 서서히 민주정치의 문제에 관심을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결국 건국의 영웅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부정선거로 빚어진 정치파행의 책임을 묻게 된 것입니다.

산업화의 보수정치는 자본과 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인력자원을 중심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성공하면서 세계가 놀랄 만큼 거창한 경제성과를 일구어냈습니다.

그러나 절대빈곤을 훌쩍 뛰어넘어 상당한 수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2000년의 가격 기준으로 1인당 GDP가 3,000$ 이상의 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존속가능성이 크고, 1인당 GDP가 6,000$를 넘어선 사회에서는 민주화가 역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사회경제적 기반이 존재해야 참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6.10 항쟁이 이룩한 민주화가 시작된 1987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처음으로 3,000$을 넘어 3,509$에 이르렀고, 3년 뒤인 1990년에는 1인당 GDP가 6,397$로 증가되어 민주화가 불가역(不可逆)의 정상궤도로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1997년에 이어 2007년에 또다시 이루어짐으로써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초로 두 번의 정권교체 테스트(two-turnover test)를 통과하면서 선진형 민주정치에 진입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이러한 불가역적인 선진형 민주정치를 확립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체제경쟁을 해낼 수 있는 국민국가가 확고하게 수립되었고, 고속성장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져서 민주정치의 방패세력으로 성장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근대화의 3대 목표인 국민국가 수립,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각 단계별로 보수세력이 그 시대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였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지혜를 배우자

물론 이승만과 박정희 시절의 부정선거나 반민주적 인권탄압 등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단순한 비난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이루어 낸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선택, 산업화의 공적 등이 한국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음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주어야 비로소 총체적으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비판을 가할 때, 객관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준을 제시하거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관점 내지 기준을 내세우면서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객관적인 업적마저 애써 무시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갖는 역사관과 인물평가론을 배울 필요성이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마오저뚱은 집권과정에서 집단농장화를 통해 수백만 중국인들을 굶어죽게 하고,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을 처단하는 광기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후임자였던 덩샤오핑은 ‘마오 동지의 공이 7이라면 잘못은 3’이라고 평가하면서 마오쩌뚱을 옹호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모적인 정쟁을 비켜나가면서 개방화를 위한 거보를 내딛는 쪽으로 중국 인민의 마음을 모아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공-과를 함께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功)은 공대로 계승하고 과(過)는 과대로 경계하면서 역사를 통해 진정한 타산지석의 지혜를 얻을 수 있어야 지금보다 나은 내일이 우리에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올바른 보수주의자의 길이기도 합니다.

 

정준길 변호사(새누리당 서울시 광진을 당협위원장)

세종초등학교, 건대부중ㆍ고 졸업

서울대 입학ㆍ법과대학 졸업

KAIST MBA 졸업

사법시험(35회) 졸업ㆍ사법연수원 졸업(25기)

부산지검 검사, 수원지검 여주지청 검사, 울산지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소년부, 특수3부 검사

상해 복단대 방문학자 및 화동접법학원 수학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공적자금비리 수사처 포함)파견

새누리당 광진구(을) 국회의원 후보

CJ(주) 경영전략지원 담당

CJ 제일제당 경영지원실 상무(전략구매실장)

업코리아, UPKOREA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