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길의 공화주의(3)> 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
<정준길의 공화주의(3)> 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15.10.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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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수립은 위대한 역사의 시작
▲ 새누리당 정준길 광진구을 당협위원장.

역사의 순간들은 지나치게 미화되어서도 안 되고, 과도하게 폄훼되어서도 안 됩니다. 역사야 말로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그 사회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소속원들이 공유하게 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정수이어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진실에 입각한 역사를 추구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만들면서 사관 이외에는 아무도 사초를 보지 못하게 하였고, 심지어는 전제 왕권을 휘두르던 임금 자신도 사초 열람은 불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사초를 본 사관이 그 내용을 누설할 경우 중벌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엄격한 제도 덕분에 사관은 진실을 직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의 현실을 보면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함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을 갖기 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역사적 관점에 휩쓸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 해방과 건국’에 대한 관점입니다.

두 개의 8월 15일

한 가지 재밌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어났던 ‘해방’과 1948년 8월 15일에 있었던 ‘대한민국 정부수립’ 중에 과연 어떤 사건이 우리에게 있어 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후자 보다는 전자의 8.15를 더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 많고, 특히 민주화 세대가 그러합니다. 그들은 상당수가 후자의 8.15 즉 대한민국정부수립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1945년 민족 해방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해방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연합국의 핵폭탄 투하로 인한 일본의 패망으로 얻어진 미완성의 주어진 해방이라고 봅니다.

그 결과 해방 직후 한민족의 의사에 반해 38선이 그어지고 남쪽엔 미군, 북쪽엔 소련군이 들어오는 등 외세가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이 한 달 정도 먼저 단독정부를 세웠고, 뒤이어 북한도 정부를 세움으로써 민족의 분단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통일을 위한 한국전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했으나, 1953년 휴전협정까지 이어져 도리어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한 마디로 반만년 동안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뽐내던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쳐, 다시 외세의 손에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관점은 곱씹어보면 참으로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외부의 힘에 의한 일제지배의 종식이기 때문에 미완의 해방이었다는 주장은 현실성은 없고 관념적인 당위성만 있는 주장입니다.

당시 우리 민족은 스스로의 힘에 의한 해방이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정은 우리만의 사정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던 수많은 피지배 국가들에게 공통된 사정이었습니다. 강대국들의 각축전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식민지 상태에 있던 민족 중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쟁취한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2차대전은 1945년 이전의 자본주의와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를 구분해야 할 정도의 전 세계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세계사적 분기점에 대해 단지 ‘우리 힘으로 얻은 해방이 아니었다.’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 협소한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분단의 주된 책임을 미국에게만 묻는 관점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8.15 이후 남쪽에 들어온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분단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으로 흐릅니다.

이 관점에서 쓰여 진 역사서를 보면 미군은 우리를 무시하는 매우 거만한 존재인 반면, 소련군은 북쪽 인민들에게 겸손하고 우호적으로 대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건대, 소련군이건 미군이건 모두 자국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기위해 한반도에 파견된 물리력으로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남쪽의 단독정부 수립이 민족분단을 가속화 시켰다는 주장 역시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객관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당시 남과 북은 미소공동회의 결렬 이후 이미 각각 별도의 정권수립의 길로 가고 있었고, 실제로는 북한이 먼저 정부수립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해왔음이 사료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단지 20여일 먼저 선포되었다는 이유로 우리의 정부가 민족의 통일염원을 외면한 반민족적인 단독정부였다고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견해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좌파의 역사장악

문제는 이러한 관점의 귀결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민족분단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규정하는 이 관점의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관점은 북한의 남침을 미화 합니다. 6.25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도발한 전쟁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역사를 폄하하는 관점에서는 북한의 전쟁도발을 ‘민족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둔갑 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전쟁의 과정에서 일어난 참상과 국민의 희생, 그리고 이에 대한 북한의 책임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합니다. 우리 정부의 기원이 민족분단의 씨앗이라고 보는 이상 대한민국은 태생적으로 부정적인 역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좌파들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가 아니고, 6.25는 민족통일전쟁이었으며, 한국역사는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오욕의 역사로 봅니다. 그리고 한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 극복 내지 타파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은 특히 민주화세대와 식자층을 중심으로 부지불식간에 상당히 확대되어 왔습니다.

한국의 좌파는 제도 정치권 안에서는 크게 의미있는 세력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70년대 이후 장기적‧집중적 노력의 결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을 장악하는 성과를 일정 정도 거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로 인해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조국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부를 불신하고, 국가를 부정하며 종종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너무나 쉽게 ‘이민 가야돼!’라고 말합니다.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는 대한민국

그러나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부정하는 좌파의 주장은 객관적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대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고 (故) 리영희 교수는 생전에 ‘이 나라는 엄청난 미신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한국이 유엔 총회에서 승인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가 아니라고 끈질기게 주장하여 왔고, 그 주장에 동조하는 분들이 국사학계에서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결의문의 내용을 오역(誤譯)하면서 사실을 왜곡(歪曲)한 것입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주장이 최근에는 다시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1948년 12월 유엔총회 결의문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전체의 관할권을 갖는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관할권을 유엔감시하의 자유선거가 이루어진 38선 이남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해석의 쟁점이 되는 부분은 바로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그 지역(38선 이남)에서 그와 같은 (합법적인) 유일한 정부임을 선언한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 번역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유엔감시하의 자유선거가 이루어진 38선 이남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해석되므로,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북한지역에서는 합법정부가 아니고, 따라서 다른 합법정부가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이교수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 지역에서”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원문에는 오히려 “한국에서(in Korea)”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수가 오역한 “Korea의 그 지역에서(over that part of Korea)”라는 문구는 대한민국의 관할권에 관한 언급을 할 때 나오는 문구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UN이 인정한 대한민국의 관할권은 비록 유엔감시하에 자유선거가 이루어진 38선 이남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만이 유일한 합법정부입니다. 당연히 당시 한반도에 이미 존재하던 ‘두 체제’ 가운데 북한 정부는 합법정부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1948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서 공산권을 포함한 회원국 58개국 중 48개국의 압도적 찬성을 얻어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승인받게 된 것입니다(찬성 48, 반대 6, 기권 1, 결석 3).

이 교수가 어떤 의도에서 이와 같이 오역을 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식자들 중 다수가 이영희 교수의 주장이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고(필자도 관련 자료를 확인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일부 교수들이 2011년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논의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됐다는 문장에서 ‘한반도의 유일한’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위와 같이 ‘한반도의 유일한’이란 문구를 빼려고 한 이유가 ‘사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제대로 가르쳐주어 해결하면 될 것이나, 그 태도로 보아서는 의도적으로 그 주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그들이 왜 실체적 사실에 눈감으면서 대한민국의 관할권이 38선 이남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UN의 승인을 받지 못한 38선 이북을 당시 지배하던 북한정권도 “합법정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결코 왜곡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객관성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위대한 역사의 시작

저는 1948년 정부수립은 우리 국민과 민족에게 보다 큰 의미와 소망을 주는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전 지구적으로 열강의 식민지들이 오랜 숙원인 독립을 성취하면서 신생국가로 발돋움하는 세계적인 시대조류와 발걸음을 함께 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제국주의의 침략 속에서 각성한 대한민국의 국민을 형성했고, 봉건왕조 체제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이는 바로 냉전체제가 굳어져가는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의 공산화라는 동북아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민족내부의 사상적 대립과 반목을 딛고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건국된 대한민국은 중국의 공산화로 조성된 불리한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도 공산주의의 유혹을 떨쳐내었고, 한국전쟁으로 밑바닥까지 내동댕이쳐지는 어려움을 극복해내면서 경제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세계화를 동시에 이루어내 현재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출범 자체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좌파적 역사관은 자학적이고 편협하며 비현실적인 가치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의 발전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자랑스런 측면은 애써 한쪽 눈을 감고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그릇된 역사관과 그 저변에 깔린 정치적 의도에 대해 우리는 비판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자유를 향한 큰 걸음이었습니다. 오늘의 북한은 인터넷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고,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습니다. 중국으로 가려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삼대 세습의 독재체제, 전체주의적 가치관에 함몰된 북한주민을 바라보며, 우리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얼마나 자유가 소중한지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역사는 없습니다. 뒤돌아보면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을 자랑스런 대한민국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위대한 출발점으로 만든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합당한 평가와 박수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의 탄생에 빚지고 있습니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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