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코르셋 그리고 그 경계선의 현아
셀프코르셋 그리고 그 경계선의 현아
  • 정수연 문화평론가
  • 승인 2015.08.2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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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성의 코르셋을 조이다.

[업코리아=숙명여대 정수연 문화평론가] 최근 언프리티랩스타에 출연했던 랩퍼 제이스와 키썸이 내놓은 노래‘성에 안 차’가 그 주제와 가사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대강 가사의 내용은 일부 여성들이 끊임없이 많은 백(bag)과 옷을 사고도 만족을 하지 못하며,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대접만을 받길 원하는 태도를 디스(diss) 즉,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더해 곡의 홍보 카피라이트에서 ‘김치녀를 저격한다.’라는 여성혐오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곡은 더 많은 반발심을 샀다. 현재 제이스와 키썸의 소셜 네트워크 페이지에는 곡의 가사와 모순되는 행동을 비꼬는 댓글로 가득하다. 이런 현상은 요즘 몇몇의 온라인 세상 속에서 퍼지고 있는 ‘여성혐오’ 분위기를 그동안 잠자코 받아오거나 혹은 이에 불편함을 느끼던 사람들의 울분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 제이스와 키썸이 여성혐오에 대해 민감했던 분위기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성과 남성, 성을 나눌 것이 없이 어느 성별에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말이다. 그런 몇몇의 문제적 인간들을 성 전체의 특성인 것처럼, 편협적인 시각을 고정하여 놓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하지만 ‘김치녀’라는 어휘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만하게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현재 무언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이스와 키썸이 비판받는 이유는 이 곳에 의거한다. 그들은 과소비를 하고 애인에게 경제적으로 빌붙는 몇몇 ‘사람들’의 특성을 여성으로 국한시키고 그 특성을 여성의 이미지로 굳히는 것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편협한 사고가 스며들은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이 속에서 여성들은 점점 셀프 코르셋을 착용하기 시작한다. ‘나’자신이 아닌 남성들 혹은 어떤 누군가의 맘에 들기 위해, 그들이 정해놓은 여성 또는 ‘개념녀’의 틀에 갇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생각까지 하는 지경에 와버린 것이다.

셀프코르셋은 특히 아이돌의 경우에도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 여성 아이돌은 남성들의 마음에, 남성 아이돌은 여성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셀프 코르셋을 착용한다. 사람을 얼마나 끌어들이느냐, 특히 이성을 얼마나 끌어들이느냐가 곧 그들의 직업적 능력이기 때문에 그들은 가끔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가짜를 내놓아야 한다. 여기에서 여성 아이돌은 더 빈번하게 성을 상품화하기 때문에 남성 아이돌보다 조금 더 문제가 된다. 그들은 자신의 여성성이 아닌 남성이 좋아할만한 여성성을 끄집어내어 장식한다. 많은 아이돌이 이런 문제에 봉착해 있고 그들의 회사에서 나온 컨셉은 하나같이 ‘남성이 좋아할만한 여성의 모습’ 즉 ‘선정적인 모습’이다.

이에 대해 그 경계선에 있는 가수는 ‘현아’이다. 그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섹시하다. 그녀는 자신의 섹시함을 잘 알고 잘 표현한다. 노래를 하는‘가수’로서의 실력은 의문이지만 춤을 추고 자신만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만드는 ‘아이콘’으로서의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진화된 모습이다. 현아는 자신의 곡 가사처럼 마치 내일이 없을 것 같은, ‘야함’의 끝을 보여주지만 누구보다 주체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여성 아이돌과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그녀가 원해서, 즐기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보인다. 몇몇의 과한 안무들은 여느 섹시 컨셉의 여성아이돌보다도 선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퇴폐적인 섹시함이 자신이 가장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번에 발매한 그녀의 신곡의 가사와 같이 “너는 너고, 나는 나다.”와 일치하는 태도다. 당신들이 싫어하든 말든, 나는 예쁘고 섹시하다는 말을 자신 있게 말하는 그런 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경계선에 있다. 완전히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녀가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여성성이 아직까지는 남성이 원하는 여성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그곳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나 이미지를 ‘소비해야만 하는’가요 시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분명히 안타까운 일이다. 현아가 선정적이고 파격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수록 대중들은 더한 것을 원한다. 훗날 어느 정도를 넘어서는 선정성이 없으면 대중들이 별 감흥 없이 반응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아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 즐기면서 춤을 추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 재능이 판매만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가 경계선에서 넘어가 스스로 남의 틀에 맞춰진 코르셋을 조여 매지 않기를 바란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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