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상다리로 살아가는 방법,영화<장수상회>에서 찾다
부러진 상다리로 살아가는 방법,영화<장수상회>에서 찾다
  • 양혜은 문화평론가
  • 승인 2015.07.1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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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장수상회>의 한장면
[업코리아=양혜은 문화평론가]혼자 사는 세상이라 한들 애초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누구에게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으며 운이 좋으면 형제까지 더해져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예로부터 가족구성원들은 각자의 고유한 역할들이 존재했고 이를 통해 삶을 유지시켰다. 아버지는 사냥을 가고 집을 지었으며 어머니는 자식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맡았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러한 역할분담은 무의미해졌다.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고 아버지가 가사 일을 돕는 경우도 늘었다. 개별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각자에게 주어진 고정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개인의 능력과 권한에 따라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변화는 가족 구성원을 독립적인 개체를 넘어서 분리된 개체로 만들었다. 개인의 삶이 중요해지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개인주의가 들어선 것이다. 유학 간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가 늘었고 이혼이 보편화되면서 편부모 가정이 넘쳐난다. 가정의 불화와 폭력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자녀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사라졌고 무책임과 개인주의, 상실감으로 무너져간 가정들이 평범해 보이는 세상이다. 앞으로 소개할 영화<장수상회>또한 이상한 가족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비밀을 통해 가족의 따스한 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질 고약한 할아버지와 소녀 같은 앞집 할머니의 로맨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은 예고편으로 관객을 속인 영화 <장수 상회>가 있다. 일단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가 맞다.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어르신들의 사랑이야기이다. 매일 보던 젊은이들의 불같은 사랑과는 다른 노년의 성숙하고 정중한 사랑이 사뭇 신선하게 다가온다. 두 사람은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화관과 놀이공원을 다니며 데이트를 즐긴다. 그리고 서로에게 첫 사랑 같은 설렘과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라고 단정 짓기엔 감춰진 이야기가 너무 많다. 치매에 걸린 남편과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아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기억 못하는 남편을 위해 앞집 할머니로 살아가는 아내의 슬픈 이야기이다. 영화는 항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꾸며놓는 마법을 부리고는 한다. 두 사람의 로맨틱한 사랑이 이뤄지기까지는 역할극에 완벽히 몰입한 가족들이 있었다. 장남 김장수는 마트에서 일하며 아버지를 돌보고 손녀는 등굣길에 할아버지의 행적을 살피고 데이트를 도와준다. 마을 주민들 또한 적극적으로 치매 할아버지 김성칠씨를 관찰하고 도와준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역할극이자 귀여운 사기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 결과,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 김성칠씨와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아내 임금님의 사랑이 이뤄진다.

영화 속에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기억장치가 존재한다. 김성칠씨는 치매로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특이한 이름인 임금님과 그녀가 두려워할 때마다 불러주었던 노래가 둘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준다. 둘의 끈끈한 사랑은 그렇다 쳐도 치매노인을 위해 힘써준 수많은 조연들은 왜 그를 도와주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그가 살아온 생애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마을주민들이 합심하여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노인을 위해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만든 이유는 사랑이었다. 그가 아프기 전까지 헌신적인 가장이자 정이 넘치는 마을 주민이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족은 상다리와 같다고 했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교수님께서는 어느 다리 하나가 부러지고 제 역할을 못해도 다 같이 받치고 서있는 게 가족이라고 말씀하셨다. 장수상회는 치매 할아버지인 김성칠씨의 빈자리와 무게를 다른 가족들이 버티고 서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가족의 정의이다.

가족에게는 분명 각자의 역할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장남, 막내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 부모님은 용돈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사람이 아니며 자식들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살아야하는 인격체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의존이 아니라 존중으로 가족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 아이를 달래주려고 쉽게 원하는 걸 주고 있는 부모와 용돈에 의지해 부모를 찾는 아이들은 모두 잘못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장수상회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두고서 가족들이 어떻게 제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그들은 가족의 끈끈한 정으로 아버지라는 빈자리를 채워간다. 우리들은 상다리와 같은 가족의 역할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원하는 걸 다 해주지 않는 부모님을 탓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아오는 자식을 혼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나만을 위해 가족을 헌신시키는 개인이 아닌 가족을 위해 내 일부분을 헌신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우리가 상다리로서 해야 할 역할이자 튼튼한 가족의 울타리를 만드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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