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수수산물 특화시장" 앞에서 쓰는 신난중일기(新亂中日記)
"(주)여수수산물 특화시장" 앞에서 쓰는 신난중일기(新亂中日記)
  • 김영일 객원기자
  • 승인 2019.01.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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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노쇠하고 약봉지로 무장한 스무척의 전함이 있사옵니다.
여론전으로 비화되어지는 '주)여수수산물 특화시장' 상가미분양사태사진제공: 김진수
여론전으로 비화되어지는 '주)여수수산물 특화시장' 상가미분양사태사진제공: 김진수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

1597년 조선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에 대해 이순신장군은 비장한 심정으로 장계를 올렸다. 승산이 없는 전투였다. 12 척의 배를 가지고 133척의 적선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았다. 전쟁이란 싸우고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이겨놓고 싸운다는 손자병법으로 보아도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충무공은 승산이 없는 이 싸움을 선택했다. 그리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세계사에 길이 남을 ‘명랑해전’이다. 무엇이 이 불가능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영화의 한장면 네이버 제공
이순신 장군의 영화의 한장면 네이버 제공

이순신 장군의 피와 혼이 서려 있는 여수에 12 척의 전선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끌고 '新 난중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바로 김진수 시인 이다. 법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무력(武力)을 연습한 군인출신도 아닌 한갖 글쟁이가 전투를 한다 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싸움은 어쩌면 ‘명랑해전(1597년9월16일 울돌목에서의 전투)’에서의 이충무공의 전투보다도 더 치열해 보인다. 바로 '(주)여수수산물 특화시장'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김 시인은 “2003년 4월경 장 모(주)수산물특화시장 대표씨는 건물 준공 후 분양지분 등기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주변의 영세 상인들에게 건축비를 각출하여 건물을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처음의 약속대로 분양등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합 형태로 출발했던 주식회사가 부정확한 방법으로 대표이사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상인들의 권리를 상대적으로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한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상인들의 가계에 단전단수를 행함으로써 시장에서 쫒아내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의 약속대로 분양등기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상인회 측은 처음의 약속대로 개인상가를 개인업자에게 분양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김 시인은 슬픔에 목이 잠기는 듯 말을 흐렸다. 김시인의 주장대로 애초에 수산물 특화시장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상인들에게 상가를 분양하기로 약속하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분양대신에 주식회사측과 처음의 약속대로 분양을 요구하는 김 시인과 (구)상인회 측의 법적분쟁으로 인하여 물질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로감도 말로 다 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속히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은채 여전히 분쟁과 소송중에 있다.

이에 여수시의회에서도 지난 11월 30일 주종섭 시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 질의를 하였으며 시청에서도 중재를 위해 나서게 되고 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 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또 2018년 11월에는 충청도의 김창규 시인(목사)이 (주)수산물특화시장의 불의를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 일로 인하여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하였다.

김진수 시인
김진수 시인

"본시 ‘(주)수산물특화시장’은 단순한 상가가 아닙니다.  이곳은 ‘해양도시’로써의 여수의 품위와 자긍심을 심어줘야 할 여수시민의 자랑거리죠.  이것은 사익보다는 공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특화시장이 시작될 때 시에서도 총 198 억을 들여 주변의 주차장이나 아케이드를 설치해 주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회사대표 장 모 씨는 이러한 공익성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의 사업의도를 철저히 외면해 버린 것이죠. 때문에 시에서도 조속히 이러한 구조로 변질되어버린 회사 구조를 공익을 추구하는 구조로 바꾸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줘야 합니다"

김 시인은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머금는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여수시민의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주)수산물특화시장이 여수시민을 위한 공익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시인의 주장이 시에서도 쉽게 들여 지기는 쉽지 않다.

“(구)상인회 측의 요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시는 행정을 담당하는 곳이고 법을 집행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시정책을 펼치는 것이지 주관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시는 아케이드 관리권을 ‘(주)수산물 특화시장’에서 회수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도 정황이 아닌 법적 사실에 기초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정황상 올바른 것이라 할지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조치도 취하기가 난감합니다. 빨리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익명을 요구하는 시 관계자 역시 안타까움으로 말한다. 기실 시정부가 ‘(주)수산물특화시장’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시의회’에서도 논의되었지만 우선적으로 시장 앞에 있는 아케이드 관리권을 회수 할 수 있다. 수산시장 앞에 있는 주차장 시설을 폐쇄 시킬 수 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해수사용이나 상수도 시설에 대한 압력을 통한 행정권을 사용하여 압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공익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문제는 어느 것이 공익이냐는 것이다.

결국 싸움은 다시 (구)상인회측과 주식회사 측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즉 둘 사이의 법리 다툼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야 시에서도 행정력을 동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리공방은 오랫동안 공전을 하고 있다. 그 사이에 많은 감추어졌던 잘못 알려졌던 것들도 드러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방은 끝을 내기가 쉽지 않다. 십수년 동안 법리가 공방만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공방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시의 행정권이 함부로 개입 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법이란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뼈대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은 사회계약에 의해 나오는 것이며, 사회구성원들의 공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때문에 법에는 윤리가 있고 취지도 있다. 그리고 법적 공방을 할 때에는 늘 이것을 벗어나면 안된다.

이것은 재판정에서 판결을 하는 법관들에게만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정을 담당하는 ‘시당국’ 역시 이러한 정신이 요구된다. 특히 민선시장 시대에 시 당국은 더더욱 시민들의 공리에 관심을 가지고 최대한의 행정권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것은 시 당국이 먼저 상인회 측과 주식회사가 당사자들이 법적 문제를 해결 한 후에야 시에서 개입 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리어 시당국은 최대한의 시민의 공리를 위한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설령 한쪽이 합법적으로 행하였다 할지라도 이것이 처음의 목적과는 다른 데로 가고 있다면 최대한의 행정력을 동원하여 본래의 방향대로 가도록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공복의 자세일 것이다.

이것이 시당국이 “(주)수산물특화시장”에 개입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처음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법적으로라야 어찌되었든 뭔가 잘못되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약속대로 분양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상인회원들 대부분이 영세상인들로써 노약자들이다.
처음약속대로 분양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고령의 상인회원들

그런면에서 처음의 약속대로 분양등기를 해달라는 상인회측의 요구에 대해 시 당국은 진지하게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법리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옳았고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1심에서 상인회측이 재판에 진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내용을 훝어 보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회사측의 고소항목에서 몇 개를 재판관이 기각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재판관은 상인회 측의 손을 들어준 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회측은 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법적 심판에서 진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측이 우리들을 계속해서 압박해 왔지만 우리는 적절히 대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들은 법을 알고 이용했고 우리는 법을 몰라 당했던 것입니다. “

김 시인은 안타까움으로 토로한다.

 이순신 장군은 나라의 녹을먹는 군인이었다. 왕은 하늘의 아들이요 나라는 왕의 것이라는 그래서 ‘나랏님’이라는 사유체계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부당한줄 알면서도 시대의 권위에 충성을 다한 이충무공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랏님’은 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의 ‘나랏님’은 조선의 백성이었다. 그래서 수군을 버리라는 왕에게 아직도 신(臣)에게는 열 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라는 장계를 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싸움에서의 승리가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란에 쓰러져간 조선 백성의 울부짖음과 그들의 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백성을 버리고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도성을 버리고 도망갔던 비겁한 나랏님 , 그러면서도 ‘나랏님’으로써의 체통을 유지하기 위해 의병들까지 역도로 몰아 처형하던 비굴한 ‘나랏님’으로부터 처절하게 버려진 진짜 ‘나랏님’인 조선 백성의 안타까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김진수 시인!

한갖 글쟁이에 불과한 시인의 전쟁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십 수년을 끌어오고 있지만 끝은 멀기만 한 전쟁속에서 상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시인이 뛰어든 시간도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그는 이 전투를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가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마음에 처음의 약속에서 철저히 버려진 자신의 ‘나랏님’인 ‘상인회’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의 분양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이것은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할 자신의 자리를 잃고 시장에서 쫒겨난 상인들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되찾아 주어야 합니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페이스북에 '신난중일기(新亂中日記)'를 썼다.

" 전하!

저에게는 아직 20척의 전함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노쇠하고 다양한 약봉지들로 무장을 했지만 폭압과 부패와는 죽어도 타협할수 없다는 진짜 애국투사들입니다. "

웬지 비장한 그의 모습에서 이 시대에 다시 이순신장군의 마음을 보는듯한 묘한 여운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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