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은 '우리' 이야기
풍문으로 들은 '우리' 이야기
  • 윤홍원 문화평론가
  • 승인 2015.04.2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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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갑과 영원한 을

 [업코리아=윤홍원 문화평론가] 서민소녀의 재벌가 입성기. 사실 이 한문장으로 드라마 ' 풍문으로 들었소' 전체를 정의내릴 수 있다.  재벌이 빠지면 드라마조차 완성되지 못하는 시기에,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 딱 좋은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연일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며 호평을 받는 이유는, 뻔하고 진부한 소재에서 발견한 뜻밖의 참신함 때문일 것이다.

소녀와 재벌가 도련님의 사랑 이야기만으로는 더이상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없으며, 본 드라마의 취지 또한 애초에 그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드라마는, 평범한 서민 집안 출신인 여주인공 서봄이 대한민국의 숨은 실세 한정호의 집안으로 입성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심리와 태도를 그리고 있다.  본 드라마가 그리는 서민의 캐릭터는, 순진한 피해자이자 영원한 을이 아니다. 여주인공 서봄은, 시아버지 한정호가 가진 힘의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것을 소망한다. 또한 권력의 맛을 본 이후, 타고난 눈치와 재량을 바탕으로 그 힘을 휘두르며 아랫사람의 위에 서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녀의 친정 또한, 딸의 시댁을 경우 없는 사람들이라 욕하면서도, 큰 딸 서누리의 취직 자리를 부탁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등 이중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취한다. 결과적으로 거절하기는 했지만, 한정호 측에서 제시한 집 수리와 사업 자금등의 혜택을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설정을 통해 작가가 의도하고자 한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명언을 의도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빈틈없는 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원래 본인의 손에 쥐여져있던 것인 양 칼자루를 휘두를 수도 있다.  얼핏 재벌가의 비리와 위선을 비웃는듯한 이 드라마는, 어쩌면 일반 서민들의 - 비겁하다고 말하기엔 씁쓸한- 속물의식을 꼬집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드라마 속에서 선망과 질타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재벌들은, 말 그대로 '풍문'속에 존재하며 살아 숨쉰다. 그들을 소문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어쩌면 그 성곽 밖에 있는 일반인들의 호기심과 부러움, 혐오감 등이 섞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반인들이 재벌들의 세계와 가까워지고, 그들의 민낯을 보는 순간, 그들을 더이상 풍문의 대상이 아닌, 이미 자신 그 자체로 인식하게 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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