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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칼럼 > 노사정위원회의 존재 정당성에 대한 의문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경제위기 극복의 방식으로서의 노사정위원회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 하겠다. 본인은 1999년 3월 1일 모 일간지에 “노사정 합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네덜란드는 영국, 뉴질랜드와 함께 경제개혁에 가장 성공한 국가로 꼽힌다.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을 이루어낸 네덜란드 경제는 사실 1970년대에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1983년 루버스 내각에서 시작한 경제개혁은 16년이 넘게 아직도 추진되고 있으며 이러한 네덜란드의 경제개혁이 가능했던 기반은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ccord, 1982)과 뉴코스 협약(New Course, 1993)으로 대변되는 노사합의였다.”

당시 1997년 외환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 극복 방안의 하나로 일부 북유럽 국가들이 채택한 사회적 합의에 주목했었다. 경제 위기극복의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는 모델로 보였던 것이다. 노사갈등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하고, 나아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안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탈퇴를 선언했고, 한국노총이 조건부 탈퇴를 선언하면서 위원회 협의는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칼럼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는 계속 불발되었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노사정 합의가 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로 조금식 양보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노사정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이후 수년 동안 북유럽과 기타 지역의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통한 사회적 합의와 협의제 민주주의를 연구했다. 연구 과정에서 정치학자들 보다는 노동경제연구원 등 노동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 노동계 상황에서는 노사정 타협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듣게 되었다. 정치학자로 다른 나라 노사정 합의를 통한 경제 위기 극복 사례만 들여다보면서 한국의 노동계를 지나치게 순진하게 낙관적으로 보았던 것이었다.


노사정위원회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

한국에서 노사정 타협에 이르지 못하는 핵심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라는 두 노동조합의 분열과 헤게모니 경쟁, 그리고 조합원에 의해 뽑힌 지도자가 조합을 장악하지 못하는 독특한 노조 지배 구조가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당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 위원장으로 노동정치를 오래 연구해온 모 교수의 지적에서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1) 정부가 노사정 합의사항을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IMF 체제에 따른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으로 국가의 능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 (2) 노조의 권위집중도가 낮고, 파편화함으로써 노사정 합의의 실효성이 매우 낮다는 점, (3) 노조가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전략적인 딜레마의 상황에 처해 실현가능한 대안적 요구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4) 1960년대 이후 본격적 산업화 이후 대결적 노사관계가 일상화되어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며 협조적 노사관계로 전환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노사정위원회가 타협에 이르기 어려운 상황은 지금도 거의 변화하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화와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과거보다 훨씬 더 힘이 없고, 한국노총·민주노총 양대 노조의 헤게모니 경쟁, 노도지도자의 권위 부재, 실현가능한 대안 제시의 부재라는 고질적인 문제는 과거와 동일하다. 국회는 표 떨어질라 한국노총·민주노총 양대 노조의 눈치만 보고 있다. 정치권은 노사정의 ‘노(勞)’의 태도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하니 노사정위원회는 정치 투쟁의 축소판이 되어 타협이 늦어지고 결국 시급히 필요한 구조조정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노사정위원회는 3월 말을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이뤄낸다는 목표로 삼고 최근에는 노사정 공익위원과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8인 연석회의가 거의 매일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 "청년 실업을 볼모로 노사정 대타협을 하라고 노사를 압박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사정위원회를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면서 “(경영계에서 요구하는)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가 타협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반발과 4월 총파업 등 사회혼란 조성 등으로 실행 가능성이 의문시 된다. 현실적으로 국회와 정치권이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정 타협을 ‘사회적 합의’로 인정할 것인가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될 것을 예상한다.


노사정위원회의 근본적인 문제점 - 존재 정당성에 대한 의문

그렇다면 이제는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존재해온 노사관계가 결국 노정관계로 변질되는 것은 변하지 않고 또 그 때문에 노사관계가 정치 이슈화 되고 정치 투쟁화 되는 현실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노사정위원회의 폐지나 비상설 협의기구화로의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나아가 더욱 본질적인 문제점으로서 노사정위원회에 의한 국가 경제정책의 개입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노사정위원회가 협의기구가 아니라 의사결정기구로서의 역할이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는 노사정위원회의 존재 필요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학계에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겠다.

본격적인 논의를 위하여 노사정위원회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조합주의에 근거한 노사정위원회의 활동과 그 결과물인 노사정 타협은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의 원리를 침해한다. 조합주의는 “사적(私的) 집단에 의한 공공정책의 결정”이라고 정의한다. 노사정 합의라는 사회적 합의는 국민의 대의 기관이자 국민 대표로서 합의를 이루는 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다.

국민적 합의 기관은 국회인데 ‘국민적 합의’는 제쳐두고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노사정위원회는 이러한 국민의 대의 기관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고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헌법기관인 국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쳐두고 ‘사회적 합의’를 받아들이거나 그에 따라 입법화 한다면 국민의 대의 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된다.

둘째, 노사정위원회 내에서의 노조 대표성의 문제이다. 대한민국 전체 임금근로자 1,800만 명 중에서 양대 노동조합인 한국노총 조합원은 약 89만 명, 민주노총 조합원은 약 69만 명으로 160만 명이 못된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양대 노조가입율은 13%정도로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의 대표를 진정 전체 노동자의 대료로 볼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87%의 노동자의 이익과 의견은 누가 대변하며, 임금근로자보다 더 오랜 기간, 적은 이윤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는 노동자가 아닌가? 이들은 누가 대표하는가는 문제가 심각하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정치는 여러 방법으로 ‘노동’의 경제정책 개입을 배제하였다. 그리고 이는 학술적으로 ‘배제적 권위주의(exclusive authoritarianism)’의 탄생을 가져왔다. 그러한 과거 정부의 배제적 정책에 대하여 노조는 격렬히 저항했다. 그런데 이제 노조는 노동자의 대표를 자임하면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85% 이상의 노동자의 의견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배제하고 있다. 피해자가 역으로 가해자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셋째, 노조라는 인위적 독점 기관을 공식 기관으로 인정하여 국가 정책의 결정을 맡기는 것은 자유주의(liberalism)와 자유민주주의 대의정치에 어긋난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정년연장,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문제 등 노사가 사적 계약으로 해결해야할 사안에 국가가 개입하는 문제에 더하여 노조를 국가의 정책 파트너로 대표성을 인정하는 것은 단체주의로 개별주의적 의사결정을 존중화는 자유주의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단체주의는 노조를 포섭하여 정치적 지지 세력으로 만들며 대신 노조지도자들에게 부패성 특혜를 주는 관행으로 정착된 남미 조합주의 국가들의 포퓰리즘 정치의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노조 대표로 인정받음으로써 일종의 독점을 인정받는 것이고 따라서 친(親)정부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아르헨티나(Argentina)의 페론(Peron)식 조합주의 정부는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현대 정치에서 코포라티즘의 등장은 정부의 의도가 사적 단체들에 강제된다는 의미에서 상당한 정도로 자유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원칙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북유럽 소국들처럼 민주적 국가가 동시에 조합주의 체제를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1997년 IMF 경제 위기와 같은 국가경제 위기 시의 잠정적 대타협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노사가 타협을 하지 않고는 공멸한다는 절박성이 있어야 상호 양보에 의한 타협은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노조의 노동유연성에 대한 양보와 기업의 대량 해고에 대한 양보가 동시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조그만 모임일수록 타협이 용이한 것처럼 북유럽 소국들은 경제 규모 자체가 작다. 물론 독일의 노사정 합의도 있지만 이때 ‘정(政)’은 타협에 개입하기 보다는 ‘노사(勞使)’가 합의할 수 있는 멍석 깔아주기에 그친다. 나아가 이들 국가는 오래전부터 정치와 경제 모두에 타협과 공존의 문화가 역사적으로 정착된 문화이다. 따라서 정치도 합의제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 consensus model of democracy)가 일상화된 제도를 함께 한다. 우리는 아직도 투쟁(鬪爭)과 선명(鮮明)은 좋은 것이고, 타협(妥協)은 배신(背信)으로 취급이 되는 문화로 타협의 역사가 일천하다.


이제는 노사정위원회의 존립 필요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할 때

한국의 노사정위원회는 결정이나 타협의 대부분이 덩어리 규제를 만들거나 시장 메커니즘을 부정하고 강제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제까지 노사정위원회는 ‘정규직 과보호’라는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로 노동시장을 경직시키고 구조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합의만을 만들어 왔다. 노조가 관철시킨 노동시장 유연화에 역행하는 방안들을 정부가 받아들여 시행한다면 정규직 일자리는 보호 받고 기업은 고용을 꺼리게 되어 만들어져야 할 새로운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외치고 있는 청년실업율 떨어뜨리려는 노력은 청년이 노인이 될 때까지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임금인상은 시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위원회나 정부가 강제하게 된다면 자유로워야 할 시장은 왜곡되고, 결국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998년 1월 15일 발족 이후 18년이 되어 간다. 이제 충분히 해볼 만큼 해보았는데 규제 양산으로 경제를 질식시키고, 정규직 보호만 하고, 노동유연성을 떨어뜨려 청년실업만 악화시키며, 노사(勞使)관계를 노정(勞政)관계로 변질시켜 노사합의는 무시되고, ‘사(使)’는 배제되어 버리는 노사정위원회라면 존재 자체가 의심되는 시점이다. 노정위원회로 전락한 노사정위원회라면 이제는 그만두는 것을 심각히 고려할 때도 되었다. 18년 동안 해보았는데도 부정적인 결과가 대부분이라면 “Enough is enough”이다.

구창환 기자  koocc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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