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뭐하고 놀래?"
"우리 뭐하고 놀래?"
  • 설혜성 청년인재기자
  • 승인 2015.02.13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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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지 못하게 길들어지는 아이들.

고등학교 시절,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끼리 놀기 위해 삼삼오오 모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 친구의 "우리 뭐하고 놀래?"라는 질문에 당연하듯 "PC방 가자."라고 대답했었다. 지금에 와서도 그러한 패턴은 변한 것이 없다. "우리 뭐하고 놀래?" 라는 질문에 '노래방'이나 'PC방', '오락실' 등 밖에 대답할 거리가 없다.

이러한 이야기는 비단 나만이 아니다. "놀고 싶어도 놀만한 것이 없다." 이것은 현 시대의 청소년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문제이다. 결국 요즈음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놀것인가?'를 고민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집 근처 'PC방'이나 '노래방'등을 찾는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놀거리 문화는 명백히 부족하고,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다. 기껏해야 'PC방'이나 '영화관', '노래방' 등의 소비시설이 고작이다. 물론 청소년 수련원이나 청소년 수련관을 비롯한 청소년 기관에서 청소년의 놀거리를 위하여 백방에서 분투 중이지만, 흥보와 접근성 그리고 학생들의 시간적인 문제에서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소년들은 결국 가격과 시간 대비 저렴하고 효율적인 PC방으로 모이게 된다.

심지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 것이가?'를 확정 지엇다고 하더라도 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은 부모님으로 하여금 청소년을 '놀 곳'이 아니라 '학원'으로 보내고 있다. 더욱이 학교 내에서 보내는 시간 많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놀 시간'은 줄어 들게 된다. 청소년의 '즐길 기회'가 박탈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박탈된 '즐길 권리'는 '스트레스'로 피드백되어 돌아온다. 결국 청소년들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발산하게 된다. '기절놀이', '시체놀이' 등의 괴이한 놀이가 발생하며, 나아가 자해, 자살 등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이르키는 이유 역시 이러한 영향이 크다.

이렇게 한국의 청소년들은 제한된 '놀거리'와 제한된 '놀시간' 속에서 길들여진다. 이렇게 길들여진 생활 속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죽어간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을 죽임으로 종래에는 한국마저 죽을 것이다.

건전한 놀이는 청소년기의 충만한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소모할 수 있고, 그로인해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줌으로 사회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현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놀거리와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앞서 제시한 '놀 곳'의 문제와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에 관한 연구와 조치가 필요하다.

호이징가(J. Huizinga; 1872~1942)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말했다. 이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인간은 놀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노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이 사회의 미래를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닐까?
 

[업코리아 용인= 백석대 설혜성 청년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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