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호 칼럼] 물 흐르듯이
[곽인호 칼럼] 물 흐르듯이
  • 곽인호 국장
  • 승인 2015.01.20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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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지난 일이다. 가까운 후배 하나가 직장을 옮겨간다면서, 지금보다 보수도 많아지고 직급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꽤 중요한 자리와 역할이 주어진다고 자찬이 늘어졌었다. 신촌 어디쯤의 생맥주집에서다. 그의 자화자찬은 신바람이 되어 계속 이어져갔다. 그로서는 본디의 제 성향대로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셈이었다.

듣고 있던 내가 노파심에서 한마디 충고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말을 꺼냈다.

“왜 그 장수론 있지? 용장, 지장, 덕장…” 하고 여기까지 말하는데, 그가 손사래를 치듯, “아이, 알아요. 다 알아요.” 라고 했다. 그딴 것쯤 모를까 보냐며, 익히 알고 있다는 투로. 그래서 말을 멈추면서 그 순간 깨달았다. 주고 싶다고 해서, 내의지만으로 무엇이나 다 줄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을 사람의 의지나 준비상태가 먼저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까지.

그때 나는 그 장수론의 맨 꼭대기에 인(仁)을 얹어 강조해주고 싶었었다.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부서의 장으로서, 덕치(德治)를 넘어서라는 뜻쯤으로, 그 이상을 새겨주려 했었다. 장수가 병졸과 역지사지를 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직원들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라는 뜻을 담아, 세세한 곳까지 형편을 보살펴서 설복(說服)에 더해 감복(感服)을 불러오라는 뜻으로.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인(仁)은 ‘1.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일. 2.(철학) 공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이념, 또는 정치이념. 윤리적인 모든 덕의 기초로 이것을 확산시켜 실천하면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유교사상에서 가장 중심 덕목이라는 인을 일컬어, 공자는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여 ‘사랑을 바탕으로 삼은 조화된 정감에 의거한 덕’이라 하였고, 맹자는 본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남의 불행을 좌시하지 못하는 동정심’의 발전이라고 하였다. 주자학에서는 ‘인이란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이(理)다’라고 하였다. 인의 덕은 정의적(情意的)이어서 이지적(理智的)인 면을 보충하는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의 덕목이 추가되어 오상(五常)의 덕이 되었다.

사람의 품성을 생각해보았다.

대화중에 상대방의 말을 곧잘 자르고 덤벼드는 이가 있다. 지극히 삼가야 할 행태로,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행동이라면 서둘러 고쳐야 할 고약한 버릇이다. 그런 짓은, 떠벌리고 싶은 공명심에 겨워서 제 옅은 생각은 살피지 못하는, 설익은 자의 촐싹거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면 내가 먼저 들을 줄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들을 줄 모르는 자가 어찌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어보라. 그러면 말을 하는 상대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가를 벌써 알아채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내가 말을 할 필요가 없도록 그 대답까지를 먼저 다 말하기도 한다. 어느새 둘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말을 하면서 그는 가만히 듣고 있는 내 마음 속을 다녀간 것이다.

체험해보라.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 이심전심이 생성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을 만났다. 잘 모르는 분인데, 내 아는 분과 동석하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세상에 대놓고 내로다 하는 유의 유명인사는 아닌데,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분이었다. 말씀도 참 조용히 해서, 소음 따위는 감히 끼어들지를 못하고 우리의 주위를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그때 ‘물 흐르듯이’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식사하는 동안 내내 그분의 말소리도 물 흐르듯이 모습도 물 흐르듯이, 모든 것을 쓰다듬고 적시며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말씀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었다.

분위기에 젖어들며 듣고 있는 나도 조용해지고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이었는데도 그랬다. 거대담론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연세 지긋한 분이 겸손하기도 했다. 겸손도 꾸며서 되는 일은 아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도 다 꾸미는 데서 비롯된다. 진정성의 결여가 과공도 되고 비례도 되는 것이다.

그분이 보여준 말 수가 적은 모습은 침묵이 왜 금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진단하고 판단할 시간(여유)을 주는 것이 침묵이다.

웅변이란 감성을 자극하고, 호소하고, 설득하고, 종용하고, 윽박지르는 것인데, 침묵은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니, 배려가 돋보이는 이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장면이 어디 또 있을까. 그래서 침묵이 금이고 웅변은 은인 것이다.

말 수는 줄일수록 좋다. 말 속엔 거짓이 끼어들게 마련이고, 그래서 말을 많이 하면 덩달아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또한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조심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다. 말은 비수보다 더 날카롭다. 말에 찔린 상처는 훨씬 더 깊고, 쉽게 치유되지도 않는다.

내가 가진 생각은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되어야 한다. 굳이 입에 담아 말하지 않아도 뜻을 알아주게 되는. 내게 ‘물 흐르듯이’를 떠올리게 해준 그분은 별 말 없이도 참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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