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시문 칼럼 > 이것은 역사를 쓰는 붓이다
< 류시문 칼럼 > 이것은 역사를 쓰는 붓이다
  • 구창환 기자
  • 승인 2015.01.16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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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문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

매년 이맘때면 남도 능주에 간다. 올해도 ‘전남, 광주 사회복지사의 밤’ 행사가 있어 이웃에 있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지를 찾았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이다.

이곳은 선생이 유배를 당해 사약을 받고 최후를 맞은 곳이다. 그러니까 495년 전, 1519년 12월 20일 바로 이 무렵이다. 필자가 이곳을 찾는 것은 인간과 역사의 극적인 자취가 서려있는, 그래서 매사에 무심한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1519년 12월 20일, 능주에서 있었던 일

금부도사에게 교지를 받은 조광조는 탄식했다.“대신을 죽이면서 죄명을 적지 않았는데 나중에 간사한 자가 일어나 임금의 뜻을 빙자해 정적을 죽이더라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조광조는 방으로 들어가 집에 보내는 편지를 쓰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금부도사가 재촉하는 빛을 보이자 조광조는 다시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조서(詔書)를 안고 주막에서 울던 옛 금부도사와 어찌 이리 다른가?” 단종을 사사하러 가며 주막에서 눈물 흘리던 금부도사 왕방연을 떠올렸다. 조광조는 자리에 반듯이 앉아 시 한수를 지었다.

임금님 사랑하기를 부모님 사랑하듯 하였고/ 나랏일 걱정하기를 집안일 걱정하듯이 하였네/ 밝고 밝은 태양이 온 세상을 굽어 보고 있으니/ 일편단심 충성스런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추리라/<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사약을 마셨는데도 숨이 끊어지지 않자 금부도사 등이 끈으로 목을 졸라 죽이려 했다. 조광조는 고통속에 준엄하게 꾸짖고 스스로 사약 한 사발을 더 청해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만 37세, 첫째 아들 정(定)은 다섯 살 이었고, 둘째 아들 용(容)은 두 살이었다. 문우 양팽손은 밤이 새도록 능주벌을 적시다가 시신을 거두어갔다.

이것은 역사를 쓰는 붓이다

당초 홍경주와 남곤 등 훈구파들은 “국문할 것도 없이 조광조를 때려 죽여야 한다”고 우겨대었다. 중종은 이에 동의해 형기(刑器)를 근정전 밑에 급히 갖추게 했다. 국문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추궁할 죄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판 이장곤이 나섰다. “임금이 도적의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영상에게도 알리지 않고 죽일 수는 없습니다.”나중에 급히 달려온 영상 정광필은 긴 수염과 소매가 다 젖도록 울면서 중종에게 간청했다.

검열 채세영(蔡世英)의 붓을 임시 주서 심사순이 빼앗자 소리치며 항의했다. “이 사람들의 죄명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죽일 수 없습니다. 이들의 죄가 무엇입니까?”임시 승지 성운이 다시 붓을 빼앗으려 하자 채세영은 소리쳤다. “이것은 역사를 쓰는 붓이다. 아무나 함부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을 잃은 임금과 훈구파 앞에서 목숨을 건 행위였다.

또 한해를 넘기면서 시끄러운 세태를 살펴 보건데 채세영의 역사를 쓰는 붓이 아쉽고 조광조의 지치주의 정신이 옛 이야기 만으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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