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재 칼럼 > 통진당의 후반생(後半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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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재 국민기자
  • 승인 2014.12.2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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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재 국민기자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해산됐다. 소속 국회의원 5명은 의원직을 박탈 당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통진당의 최종 목적이라고 결론 내리고 해산을 결정했다. 2013년 11월 5일 대한민국 국무회의에서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건’을 의결한지 1년 1개월 만이다.

통진당은 2011년 1월 진보정당 간 통합 논의를 시작한 지 10개월 만인 12월,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새진보통합연대 심상정 대표가 신설 합당을 공식 결의하여 창설한 바 있다. 19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성사시켰고, 18대 대선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 의석인 13석을 얻으며 원내 제3당으로 발돋움 하기도 했다.

주로 인권을 중시하여 밀양송전탑주민, 제주강정마을주민, 쌍용차노동자, 세월호피해자, 동성애자 등 소수 인권이 무시당한다고 생각되는 곳은 앞장서서 찾아다녔다.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민주주의 후퇴’, ‘공안정국 조성’ 등으로 반응하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으로 점철했다. 근본적으로는 애국가와 태극기를 거부하면서 국민들의 우려를 낳더니 작년 9월경에는 통진당 이석기 의원이 RO사건으로 구속되었고 대한민국은 충격에 빠졌다. 이에 통진당의원들은 삭발을 해가면서 저항했고 이석기의원을 두둔했다.

정부가 하는 일에는 항상 반대였기에 아니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에는 항상 함께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정말 건전한 야권인지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인권을 앞세우기에 일부 국민은 의심을 자제했다. 또 설마하며 적은 가능성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는 1년1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증거, 준비서면, 기타 참고자료 등 도합 A4용지 기준 17만여쪽에 달하는 각종 서류를 재판관 9명이 각자 읽었다. 20여차례 공개재판을 하며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건’에 대해 통진당이 변론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그리고 2014년 12월 19일 최종적으로 8:1이라는 결과에 따라 해산결정이 내려졌다.

홍자성이 채근담에서 속담을 인용해서 한 말이 있다. “옛 말에 ‘사람을 보려거든 그 후반생(後半生)을 보라’고 했으니 이는 실로 명언이다” 통진당을 지지하며 그들의 행동이 위로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위헌(違憲) 정당.그리고 해산. 이것이 통진당의 결말이다. 그리고 본 모습이다. 그렇다. 완벽히 기만(欺瞞)당했다!

 

이인재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SNS기자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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