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프레지던트(presidant) 트럼프를 위하여!
<기고>프레지던트(presidant) 트럼프를 위하여!
  • 김영일 객원기자
  • 승인 2018.07.28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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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하나님의 사자인가? 천박한 자본주의자인가?
▲ 미국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업코리아=김영일 객원기자] 후보 때부터 기행(奇行)으로 인하여 대중으로부터 칭찬보다는 조롱과 비방의 대상이 되었던 트럼프였습니다. 여과없이 솓아지는 그의 언행과 기행은 전 미국인의 관심사였고 연일 매스미디어는 그런 트럼프를 비판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난민정책, 외교정책 특별히 군사와 무역정책중 어느것 하나 기존의 미정치인들이 해 오던 스타일과는 달랐으니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트럼프의 뒤에는 그의 당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절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16년 11월 9일 미합중국의 제 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일여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에 와서도 그의 언행과 기행은 달라지는 바가 없어 보입니다. 만일 달라진 것이 잇다면 이제는 그의 기행이 미국내에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화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어떤 후보라도 유세기간중에는 소위 튀기위한 전술적 차원에서 기행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당선된 후에는 기존의 거대한 시스템에 올라타기 위해 후보자 자신의 특성과 색깔은 극소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예외인것 같습니다.

그는 후보당시에 행했던 자신의 언행을 이제는 실행에 옮기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신념을 포기 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에 줏가가 하늘높이 치솟기도 하고 바다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는 변동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마음은 결코 편안할리 없습니다. 그는 어떤때는 너무나 즉흥적으로 말과 정책을 쏟아 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의 행동은 결코 즉흥적이지 않는 마스터 플랜위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종잡을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요? 그의 신앙의 기반위에서 미국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천박한 자본주의가의 속성일까요? 그의 이러한 기행의 추동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트럼프는 지금 그의 가장 강력한 적인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61년 1월17일 미국의 아이젠 하워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거대하고 음험한 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그 위협은 다름아닌 군산 복합체라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군산 복합체는 군부와 민간인 기업자의 연합체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군사 무기를 판매하여 부를 쌓는 집단인데 미국의 정가를 지배하는 주요 세력이죠. 사실 미국이 군사 패권주의를 통해 전세계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고, 세계도처의 전쟁을 야기하여 군수물자를 팔아먹는 이면에는 바로 이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워싱턴의 엘리트 계층을 형성해 오면서 정가를 자기들 뜻대로 움직여 왔죠. 사실 이 거대한 힘은 언론까지도 장악하고 있으며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공격하는 것도 이들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 이민자를 무제한으로 받아 들여 미국민의 하부구조를 약화시킴으로써 극소수인 그들이 절대 다수인 미국민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트럼프의 일련의 행동은 이러한 군산복합체의 힘을 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죠.  그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미군 감축이나 혹은 군비를 줄이겠다고 하고 심지어 한국주둔 미군경비를 올리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군산 복합체를 겨냥한 것이죠. 즉 그는 세계속에서 군사 패권주의를 포기함으로써 다극화를 노린다고 할수 있죠. 그런면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트럼프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한 지속적으로 군산복합체의 힘을 빼기 위한 이런 작업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트럼프의 기행과 언행의 첫번째 추동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트럼프의 통치관은 경제패권주의로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트럼프가 군사패권주의를 포기한다고 해서 그가 미국의 패권주의를 포기한다고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트럼프는 여전히 미국민들이 전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야심을 가진 사람이죠. 다만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즉 만일 군산복합체의 패권이 군사적이라고 한다면 트럼프의 패권의 수단은 경제죠. 지금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얼핏 이러한 무역전쟁의 원인이 단순히 무역에 있어서 중국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할수 있으나 실상은 중국이 경제 강국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최신식 무기를 가짐으로써 전세계의 군사패권을 장악한 것처럼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미국이 독점함으로써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이죠. 그는 자본가입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과연 자본가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 패권주의의 포기와 경제 패권주의의 확보도 어찌보면 그의 통치의 진정한 추동은 아닌듯 합니다. 오히려 그의 통치의 진정한 추동은 미국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선거 유세때였습니다. 트럼프는 힐러리 후보와의 토론을 벌이는 중에 미국의 백화점들이 무슬림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메리크리스마스로 인사하지 말고 홀리데이 라고 인사해야 한다고 정부에서 요구했다며 그 부당성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소수인종이나 종교에 대한 보호가 지나칠 정도로 강합니다.  

한 무슬림 배달기사가 선물배달에서 술이 발견되자 종교적인 이유로 배달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회사에서 그 배달원을 해고했는데 이것을 종교탄압이라고 하여 그 회사로 하여금 엄청난 벌금을 무르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수많은 히스패닉계의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정치인들은 히스패닉계의 표를 잃을까봐 아무말도 못하고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즉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지나쳐 다수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눈에 이러한 비정상적인 소수자 보호라는 명분이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의 훼손인 것으로 보았던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는 미국의 정체성이 기독교 정신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그런 미국을 다종교인들을 유입시켜 미국을 다종교 사회로 만들려고 하는 군산복합체나 미 정가의 엘리트들 혹은 전임 대통령들은 이스라엘을 점령한 바벨론의 느부갓넷살(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왕)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들로부터 미국의 정체성을 회복시킬 자신을 하나님의 사자로써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확실히 이러한 자기 인식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그의 행보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보고 있지요. 그동안 미국의 대통령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해 왔던 것을 그는 과감히 실행에 옮겨 버렸습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그의 진정한 통치의 추동은 어쩌면 하나님의 사자로써의 사명감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러한 트럼프의 신앙노선에는 심각한 문제점은 있죠. 비록 트럼프가 기독교 정체성으로 미국을 새롭게 하려고 하지만 그가 가진 기독교 정신이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 정신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2018년 2월 6일자 가디언지에는 '마틴 퍼시' 라는 분이 기고한 기사에서 트럼프의 기독교 신학은 '번영신학'이라는 내용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 내용에 의하면 트럼프의 취임식때 기도를 위해 지명된 성직자중에 한 사람인 Paula White 목사는 번영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번영신학의 선구자인 '적극적 사고방식'의 저자인 노먼빈센트 필 목사는  트럼프의 결혼식 주례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번영복음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자이기를 원하며 강복의 징표로써 부자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기독교 정신은 청교도 정신입니다. 청교도 정신은 지나칠 정도로 하나님의 도덕법의 실행에 중심을 둔 신앙이죠. 그런데 번영신학은 이러한 청교도와는 거리가 먼 신앙입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때 '프랭클린 그레함(비리 그레함목사의 아들)' 목사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트럼프가 고레스 같은 인물이며 진정한 기독교도들 즉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 신자들은 자유주의의 패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같은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투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트럼프는 바벨론으로 변해가는 미국을 다시 원래의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선택된 '고레스' 같은 인물임이 자명해집니다. 문제는 번영신학과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얼만치나 조화 될 수 있느냐는 거지요. 유감스럽게도 번영신학의 궁극적인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이 되어버릴 위험성이 있는 것이죠. 그렇게 되어질때 신앙이란 단순히 물질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은 신앙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립니다. 그러고 보면 트럼프의 신앙은 미국이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유주의 패권에서 회복시키는데 까지는 사용되겠지만 미국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번영신학의 최후의 종착지는 천박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트럼프의 역할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킨 고레스의 역할 딱 거기까지가 아닐까요? 

통일신라를 이룬 김유신 장군은 삼한통일을 꿈꾸던 분이었습니다. 허나 김유신 장군은 단순한 정복욕구에서 무력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죠. 바로 밀교의 나라 즉 '대승불교'로 삼한을 재조(再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만다라'의 세계 '불국정토'로 삼한을 부도의 나라로 만들기를 원했죠. 즉 당시까지만 해도 북방민족의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정신세계를 보다 고차원적인 불교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비록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삼한을 통일시키기는 했으나 그가 원하는 진정한 '불국정토'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신라 말기에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변질 되어버린 불교는 종교,정치적으로 극심한 타락을 가져와 버렸습니다.  종교가 정치화 되어질때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조선을 대동세상으로 만들기 원했던 정도전의 성리학 역시 마찬가지였죠.

기독교정신으로 미국의 번영을 꿈꾸는 트럼프의 꿈 역시도 같은 길을 걸어갈지 모릅니다. 결국 미국의 기독교 정신은 트럼프와 같은 자본가나 정치인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열심있는 미국의 목회자나 신자들에 의해 지켜질 것들입니다.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은 그들을 위한 일시적인 하나님의 사자일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의 유일한 희망은 트럼프 밖에 없음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일까요? 아니면 천박한 자본주의자일까요? 그것은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증명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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