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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집단 난민을 향한 한국인의 따거운 시선외국인에 대한 혐오, 종교차별, 인종차별 ?
▲ 난민법 개정 촉구집회. (사진=연합신문)

만일 제주도 집단 난민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왔다면 아니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면 한국인들의 눈이 이토록 따거울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시 한반도는 많은 민족과 인종이 흘러 들어온 곳입니다. 고대에는 왜(倭)족이 왔고, 북방에서는 흉노족과 부여족이 들어왔읍니다. 그런가 하면 삼국시대 에는 페르시아에서 많은 이주민들이 동진하여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에도 그들은 무리없이 정착 할 수 있었읍니다.

조선 세종까지도 개성부근에 무슬림인 아랍인들로 구성된 村이 있었습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우리민족은 지나칠 정도로 외국인에 대해 친절했읍니다. 이것은 우리민족이 고조선 시대로부터 고조선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백제 역시 중국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을 거느린 해양국가 였단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삼국시대의 경교(기독교)와 밀교 그리고 도교,  고려시대의 선종불교, 조선시대의 성리학 등이 본시 발생지였던 간다라 지역이나 혹은 중국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발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렇게 외국인에 대해 관대한 우리민족이 왜 예멘난민에 대해서는 비판적이 되어 버렸을까요? 우리 국민성이 바뀐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읍니다. 사실 에멘난민이나 지금도 계속해서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무슬림 청년들이 한국민들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이들이 난민이어서가 아니라 무슬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대체 무엇이 이토록 무슬림과 우리민족 사이에 이질감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요?

첫째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 갈때에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은 자존감에서 나옵니다. 한편 자존감은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읍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정체성은 국가나 종교, 가계 혹은 사회적 공동체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든 우리는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자존감이 나오고 이러한 자존감이 있을때에라야 삶을 영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난민들의 경우는 국가나 혹은 가계 혹은 사회적 공동체에서 나오는 정체성이 있을리 만무하죠. 왜냐하면 그들은 조국에서 버림을 받았고 조국으로 돌아갈 수 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을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종교입니다.  지금 제주에 온 예멘난민들이 하루 살기도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슬람의 종교적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즉 하루에 다섯번 기도하기 돼지고기와 같은 부정한 음식 먹지 않기, 라마단의 달 지키기... 이러한 종교적 행위는 사실 신앙심에서 나온 것도 있지만 자존감의 근거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종교적 정체성이 신정일치 사회를 추구하는 이슬람 이라는 사실에서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정분리 사회를 채택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종교가 달라도 같은 국가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교집합을 찾고 제3의 공동체로써 공존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슬람은 그것을 허용치 않습니다. 오직 알라만이 참신이며 그 알라만이 다스리는 정치권력을 추구합니다. 즉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칼을 들고 복종하던지 죽던지 택하라는 거죠. 비록 자신들의 세력이 약할때에는 아직 싹이 나지 않는 씨앗처럼 정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력이 강해지면 싹이 나고 싹이 나면 사고를 일으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우리사회가 도무지 수용 할 수 없는 관점이죠.

둘째로 시간이 멈춰버린 이슬람의 교리입니다.  고려시대에 무슬림들이 한반도에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기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자기들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도 국가에서 용납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윤리나 이념이 당대의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국가에서도 허용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수백년전의 윤리와 이념은 더이상 이 시대에 적당치 않습니다.  세상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급격하게 변했고, 더이상 고대인들의 사회관념은 우리사회에 합 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읍니다. 그런데 이슬람은 아직도 수백년전의 관념에서 형성된 교리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읍니다. 얼마전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사십대 남성이 11살 짜리 소녀를 세째 부인으로 맞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기준으로 보자면 엄연히 성적인 아동학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코란은 이것을 정당화 시키죠. 이것은 우리로써는 도무지 수용할수 없는 관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관습이 왜 코란에서는 허용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사실 처음에 이 법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좋은 의도였죠.  전쟁이 잦은 사막에서는 남자들이 많이 죽었고 그렇게 되면 미망인들이 생활을 할수 있는 방법이 없었읍니다. 이때 남자들에게 그 여자를 맡기는 방법중에 하나가 일부 다처제였죠. 어린 소녀를 아내로 맞는 방법도 따지고 보면 소녀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일 수 있죠. 머 우리 조상들도 12세에 결혼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고대에는 잘못된 것이라고만 할 순 없겠죠. 그러나 그것은 고대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고 이것은 보호가 아닌 여성인권을 멸시하거나 아동학대에 불과한 것이죠.  그럼 이러한 법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슬람은 천년이 넘도록 이러한 교리가 고정 되어져서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대부분의 무슬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항변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소수의 무리들의 잘못한 것을 가지고 모든 무슬림에 적용시킨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라고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결코 일반화의 오류가 아닌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말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문법보다는 관습법이 더 우선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문법을 어기는 정당성을 얻기를 원한다면 그는 관습법에서 그 근거를 찾을 것입니다. 더구나 무슬림은 성문법보다 관습법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고 코란을 사회법보다 우선시한 사람들입니다. 즉 언제든지 코란을 따라 행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들이 사회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에 대한 처벌 때문이지 양심에 반한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독일 쾰른에서 일어난 타하루시의 집단 성폭행 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겠지요. 문제는 우리사회가 이러한 이슬람의 교리를 수용할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무슬림 집단을 거부해야 할 이유입니다.

셋째로 우리민족의 공동체 정신과 충돌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공동체 인식입니다.  한국인들은 예(禮)를 중시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체면문화가 되어 비방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인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일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서 나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민은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한(韓)의 정신 때문입니다. 즉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 의 정신은 우리민족의 고유 사유체계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하나이지만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어지는 것이 우리민족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기도시간이 되었다고 일하다 말고 기도하는 무슬림, 밥먹으라고 돼지고기 내 놓았더니 돼지고기는 부정한 것이라고 소고기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무슬림, 일해야 하는데 자기 종교 교리 지키느라고 일에 차질을 가져오는 무슬림을 한국인들이 용납 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한국인들은 이들을 결코 용납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일즉다다즉일'의 사유체계에서 벗어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1427년 세종대왕의 칙령에서도 나타납니다. 

' 회회(무슬림)의 무리가 의관이 달라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끼는바, 이미 우리 백성이 되었으니, 마땅히 우리 의관을 좆아 차이를 없애야만 자연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회회인들이 대조회때 송축하는 예도 폐지하십시오. 하니 이를 승낙하였다. (세종실록 9년4월)'

고려시대에서부터 140년간 존재했던 무슬림 공동체는 이 칙령이후 사라졌습니다. 무슬림이 그들이 속한 국가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국인들에 비해 유럽인들은 매우 쉬운 사람들이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타인이 어떤 행동을 취하던 비교적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럽에서 조차 융화되지 못한 무슬림이 한국사회에서 융화되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이들은 결국 한국사회에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지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사회에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이것이 용납되지 않았죠. 왜냐하면 지금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이 왕이 국가 권력으로 그들을 학살하고 말테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인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무슬림은 교묘히 이 인권을 빙자하여 터무니 없는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국가 인권은 자국민을 위한 것이지 외국인이나 난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우리사회가 그들에게 우리국민과 똑같은 인권을 부여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은 이러한 인권조항을 교묘히 이용하려 듭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사회를 전복시키고 샤리아가 지배하는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무슬림 집단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본시 국가는 신정일치 사회로부터 출발하였읍니다. 이러한 신정일치 사회는 오늘날도 그 흔적은 남아있지요.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은 샤리하가 국법으로 정해져 있는 이슬람 국가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아랍국가는 명목상으로는 신정일치가 아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국가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이슬람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나라와 영역에서 타 종교의 유입자체를 허용치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국에서도 문제가 되어 무슬림이 가는 곳마다 자기들의 영역을 정하고 타자의 출입을 엄금합니다. 만일 자기들의 영역에 타 종교인이 있으면 '타하루시(집단 성폭행)'와 같은 포악한 방법을 통해 추방해 버립니다. 이것은 모든 나라와 사회에 무슬림에 대한 분노를 야기 하였읍니다. 미얀마에서 '로힝아' 족이 그랬고 영국과 독일등의 유럽국가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나라에 무슬립의 집단 거주가 허용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요?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무슬림의 정체를 미리 알아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을 거부하는 것이지 종교나 인종을 차별해서가 아닙니다. 

만일 지금이라도 무슬림들이 자기들의 코란의 교리를 바꾸고 종교는 종교적으로 국법은 국법으로 지키고 자신들이 들어간 사회에서 자기들의 종교로 신정일치를 폭력적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그 사회에 융화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예를 준수한다면 무슬림 집단의 난민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은 한결 유연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 무슬림의 문제는 우리 국민의 편견이 아닌 무슬림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김영일 객원기자  kka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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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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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현아 2018-08-29 12:07:04

    미국에서 홍지수 작가의 강연을 유튜브로 자세히 듣고 세계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무슬림은 편견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슬림 자체의 문제입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영적전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삭제

    • 백정우 2018-07-08 20:35:38

      무슬람 자체가 문제니까 안받는거다   삭제

      • 2018-07-08 17:55:23

        -읍니다 등 옛날문법이 글을 읽는데 많이 방해가 되네요   삭제

        • 인정 2018-07-08 17:10:48

          나름대로 좋은 기사였다. 물론 저짝에서 깔 래파토리도 정해져 있지만. 이런 기사가 아예 없었거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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