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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한국읽기>미북정상회담 이후마냥 자부할 수도 그렇다고 긴장만 할 수도 없다.
  • 강현아 보스턴 특파원
  • 승인 2018.07.0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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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017년 결혼해서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 시집을 왔다. 하버드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버클리 음악대학이 있는 이곳 보스턴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처음 이곳을 왔을 때 학문이나 예술의 열기에 반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스턴 근교의 대궐 같은 집들을 구경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집 한 채가 한국의 꼬마빌딩 수준에 달하는 것도 있고 마당의 출입문과 집까지의 거리만 봐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미국에서 부(富)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어느 날 대형 주택이 모여있는 마을을 지나가는데 남편이 물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크게 집을 짓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땅이 작으니 당연히 어려울 거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땅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이만한 부를 갖게 되면 눈치를 보느라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나름의 일침을 놓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헷갈린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인정한다는 경제 개념을 포함한다. 미국 이민 2세로 자라온 남편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지적해야 했지만 부인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오면서 하루 아침에 자국의 부를 대표하고 있는 인사들이 구속되는 것을 참 많이도 봐왔다. 부자들의 죄를 낱낱이 파헤치는 것을 볼 때마다 그것이 어둠의 표인지 정의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인식의 차이에 한번 더 헷갈린다. 한국에서 자라온 나는 부(富)를 보면 '불평등'을 떠올리는게 빠르지만 미국에서 자라온 남편은 그것을 '자유'로 본다. 사유재산의 상징일 뿐 어떤 손가락질도 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인가 사회주의국가인가. 물론 경제체제 하나로 국가이념을 이분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일 수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양립을 떠올리는 일은 더욱 어색하기만 하다.  

촛불혁명부터 남북정상회담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클라이막스를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때아닌 이념타령인가 싶지만 지난 미북정상회담을 보며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게임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국제무대에서 핵무기를 중심으로 협상이 시작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빌딩을 지어주겠다며 자신있게 조건을 내비쳤다. 두 정상이 맞잡은 손을 보고 있으면서도 평화를 먼저 보지 못하고 거대한 시장경제(미국)와 동북아의 대결구도 사이에 낀 한반도를 그 어느 때보다  주목하게 된다.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으며 자라 성인이 되기까지 이념 간의 전쟁 속에서 살아온 것이 만성이 된 것이다. 

이곳 보스턴에는 지난 2013년 세계 마라톤 대회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있었다. 용의자를 잡는데는 단 이틀이 걸렸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이유 중에 보스턴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외적인 갈채를 받았다. 이후 도시를 스스로 지켜냈다는 보스턴 시민들의 긍지와 함께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이라는 슬로건이 치안의 상징이 되어 거리를 장식해왔다.

한국도 촛불의 승리 이후 이제 나라는 국민이 스스로 지킨다는 자부심이 커진듯하다. 하지만 마냥 자부할 수도 그렇다고 긴장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고 하였으니'(고후3:17), 오늘도 진리는 시소의 지렛대처럼 중심을 유지시킨다.

▲ 그림 | 캘리그라피 하수진

 

강현아 보스턴 특파원  hyunah.kim6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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