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시문 칼럼 > 대동법과 김영란법
< 류시문 칼럼 > 대동법과 김영란법
  • 구창환 기자
  • 승인 2014.11.05 09:2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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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문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
현대판 송시열의 출현


1658년 효종 9년, 효종이 우암 송시열에게 물었다. “호서(湖西) 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하니 반응이 어떠하오?” 송시열은 진실 앞에 두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편리하게 여기는 자가 많으니 좋은 법입니다.” 양반 지주들의 입장에서 대동법 실시를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던 송시열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필자는 이번 국회에서 통과가 좌절된 ‘김영란법’이 문득 생각났다. 다수의 여론과 많은 국민이 주시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조속한 통과를 주문했는데 법제정의 주축인 국회는 만지작 거리기만 하다가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 같아 배신감을 느낄 정도이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망각한 현대판 송시열을 만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송시열은 율곡 이이의 학맥을 이었다고 하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는 율곡이 주장한 경장(更張)과 대동법의 다른 표현인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을 묵살하고 무엇보다 율곡 학통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 갖는 ‘현실개혁’을 사장시켰다. 중, 후기 조선 역사를 경영해왔던 서인(산당)들의 영수 김집과 그의 제자 송시열은 대동법의 극렬한 반대론자이다.

조선 최대의 성공한 진보주의 정치가 김육

그렇다면 당대의 시대 정신을 대변하는 대동법과 김영란법은 무엇인가? 조선시대 세금 중 가장 큰 세금은 공납이다. 이것은 각 지방의 특산물을 임금에게 바치는 것으로 충성의 개념을 조세로 표현한 것이다. 공납으로 부과되는 품목이 그 지방의 특산물이 아니고 먼 해안가에서 나는 생선을 부과하면 수백리 먼 그 곳까지 가서 사와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세금이 된다. 이런 일을 대리해 주는 사람이 방납업자들인데 이들이 관료와 짜고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다.

오죽했으면 서애 류성룡은 “대동법 실시를 반대하는 자들은 수령과 감사, 그리고 토호와 방납업자들이 옵니다” 하고 임금께 주청을 드렸을 정도이다. 공납의 폐단을 제일 먼저 주장한 인물은 정암 조광조이다. 그 뒤를 이어 율곡 이이, 서애 류성룡, 오리 이원익, 잠곡(潛谷) 김육이다. 이들 모두가 조선 왕조를 이끈 뛰어난 개혁 정치인들이다. 특히 김육은 양란으로 곤궁에 빠진 국가재정과 농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과중한 과세를 줄이고 과세 과정의 부정을 없앨 수 있는 근본대책은 대동법 시행이라는 주장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조선조 500년사에서 최대의 성공한 진보주의 정치가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공직자의 주인의식, 내 집 살림하듯 예산 절약

김영란법은 공직자간의 부정청탁금지, 고액금품수수 등 검은돈 금지, 고위공직자 자신이나 친지와 관련있는 업무를 맡아서는 안되는 이해충돌 방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100만원 이상의 금액은 대가성이 없더라도 수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 부정부패 척결에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란법의 시행의 필요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공직자들의 사익이 차단되고 집행이 엄격하게 되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재정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정부출연기관장 등 근무를 통해 공직자들이 ‘민간과 사전 기획된 부패’, ‘불요불급한 예산’, ‘부처이기주의 과다예산’현상이 많은 것을 보고 분노를 삭힌 적이 있었다. 청렴하고 강직한, 그리고 주인의식이 확고한 공직자가 아쉬운 세상 일수록 김영란법 시행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만 하다.

두 번째로 김영란법은 국제사회의 인식은 물론 외국인의 국내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공 부분 부정부패를 개선해 국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우리나라의 공무원 정치인의 부패수준이 국제 기준에서 볼 때 매우 높고 그 상태가 매년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볼 때 시간을 다투어 시행의 필요성을 느낀다. 결국 공공 부분의 부정부패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김영란법 제정은 450여년 전 조선의 대동법 시행 과정에서 본 기득권 수구세력의 저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재정건전화는 부정부패척결로

2015년 정부예산안을 보면 재정적자가 33조6000억이 된다고 한다. 정부는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 재정 확충을 통해 경기를 살리려고 하고 있다. 필자는 ‘빚’을 내서 재정을 확충하는 것보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막고 부정부패를 척결해서 효율적이고 절제된 예산집행으로 재정적자를 매우는 것이 옳다고 본다.

대동법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김영란법을 통해 성숙한 시민사회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가진 자의 큰 부패’와 ‘많이 가진 자의 사면(赦免) 부패’ 근절을 통해 공직사회를 혁신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여부는 국운 상승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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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습니다 2014-11-05 16:17:55
그러나 이러한 송시열의 개혁적인 노력들은 반대당에 의해 번번히 막혔습니다 그이유는 류선생님의 주장대로 양반들 이익을위해 또는 당익을위해 반대했을수도있겠지만 또는 율곡학파에 반대되는 학파의 이기호발설에따른 주장도 많았습니다 이와같이 그시대의 정치와 지금의 정치는 같은듯 다를수밖에없는것입니다 지금의 정치와 과거의 정치는 시대에 따른 논리와 구조가 다른것이니 그간극의 차이를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바로잡습니다 2014-11-05 16:04:43
그리고 류선생님이 이문열씨의 저서에서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베껴오셨듯이 송시열이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을 계승하지 않았다는부분은 명백한 왜곡입니다 송시열은 당시에 율곡의 철학대로 반대당보다 개혁적인 무수한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효종 현종 숙종 수십년에 걸쳐 노비종모법을 주장했으며 양전을 설치해서 대동법 확대 호포론과 훈련별창설 조총병편제주장 수차도입 안민창설치 공창변통 서얼허통 등등

바로잡습니다 2014-11-05 15:52:26
또하나의 사실은 반대론자의 수장인 김집도 죽고 김육도 죽을때가 가까웠을때는 대동법이 부분적으로나마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제도적으로 미진한부분이 많은시점이었습니다 김육의 사후에 호남지역 대동법을 부탁한 사람이 바로 송시열과 송준길입니다 이렇듯이 이문열씨의 저서에서 사료조작으로 선동적으로 주관적 의도를 가지고 글을써서 무자르듯이 왜곡된 비판을 할수있는 부분이 아니라는겁니다

바로잡습니다 2014-11-05 15:47:46
결국엔 대동법이 시행되었듯이 양반지주들이 이익을위해 반대를위한 반대만했다면 결코 성사되었을리는 만무합니다 나중에는 대동법이 시행에 이르렀는데도 몇십년이지난 김집 사후 숙종때 반대당에서 대동법을 반대했다는건 어떻게 설명하실겁니다 대동법이란건 수많은 제도중에 하나일뿐이며 제도라는건 몇십년 몇백년을 거쳐서 이루어 나가는게 당시의 정치였습니다 결국엔 대동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바로잡습니다 2014-11-05 15:41:18
류선생님 주장대로 애초에 반대론자였다면 당연하다는듯이 시인할리가없습니다 류선생님이 서술하신대로 진실앞에 두마음을 품을수없다는건 억측이거나 왜곡입니다 당시에 반대론자와 찬성론자가 논쟁을 벌인건 맞지만 반대론도 이익이나 탐욕을 위한게 아니라 뭘한가지를해도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를 고치는데있어서 토론과 논박을 통해 개혁해 나가는게 상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