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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묵상>문화 뒤편의 그림자문화 뒤에는 반드시 숨은 이데올로기가 있다

 남편과 미국 콜로라도 여행중에 경험한 일이다. 자연 온천이 유명한 곳이기에 우리는 한 곳에 들러 여독을 풀기로 했다. 그런데 계획에 있던 목적지가 문을 닫아서 아쉬운데로 근처의 가장 가까운 온천을 찾아갔다. 도착한 곳은 광활한 대지의 시골길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샘에 나무 판자로 대충 울타리만 쳐져 있었고 입구에 새끼 오리 두 마리가 뒤뚱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미국의 전원이었다.

작은 매표소를 거쳐 들어가면 둥그런 노천탕이 딱 하나가 있다. 놀랍게도 그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온천욕을 하고있었다. 말로만 듣던 남녀 혼탕이었던 것이다. 나는 남녀 혼욕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일본의 온천도 경험하지 않은 일인이다. 미국 이민 2세로 오랫동안 서구 문화 속에서 살아온 남편도 이런 식의 남녀 혼탕은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수영복 차림으로 입장을 했지만 확실한 관광객으로 구별되었다.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대부분 현지인들이 즐기는 쉽게 말해 소규모의 동네 목욕탕과 같은 곳이다. 노인과 젊은 가족들이 많았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도 있었다. 누군가는 벌거벗은 채로 월간지나 책을 읽고 있었고, 다른 무리는 한손에 맥주를 들고 끊이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 누구도 서로의 몸은 들여다 보지 않는, 여행 중에 경험한 가장 희안한 풍경이었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하늘만 멍하니 보다가 문득 문화가 갖고 있는 힘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뒤에는 반드시 숨은 이데올로기가 있다. 남녀가 함께 혼욕을 하는 문화는 유럽 특히 독일에서 유명하다. 그 시초가 독일의 일조량이 부족한데서 시작되었다니 생존과 관련짓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이후에 그것이 자연주의(naturalism)와 나체주의(nudism)와 같은 사조를 토대로 한 문화로 자리잡아 유럽 안팍의 전역에 퍼진 것이 현재 혼욕 문화의 배경이다. 이처럼 문화 뒤편에는 보이지 않는 이념이 존재하고 일부가 그것을 향유하기 시작하면 거기에 강력한 힘이 돌기 시작한다. 여러 남녀가 아무렇지 않게 벗고 함께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참 이상할법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영복을 걸친 우리가 상대적으로 더 이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새삼스럽게도 그것을 잘 뒷받침해준다. 

▲ 그림  캘리그라피|하수진

태초 이후 아담과 하와는 알몸으로 육체를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그것을 만든 창조주와의 관계가 깨어지자 모든 것이 창피해져서 나뭇잎을 주워 자신의 몸부터 가렸다. 누드비치나 남녀혼탕 심지어 프랑스에는 누드마을이라고 해서 아예 전라(全裸)가 생활인 곳도 있다지만 이 모든 것이 마치 원죄설을 역행하는 것처럼 보여서인지 개인적으로는 몹시 불편하기만 하다. 예기치 않은 문화를 경험한 결과, 사람이 사람 앞에서 다 드러내는 것이 꼭 자유롭거나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다른 모양의 숭배임을 증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강현아 인턴기자  ls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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