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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 김재환 한국화가, "홍익인간적 측면의 작품활동으로 많은 사람 이롭게하는 것""살아있는 예술처럼 사랑실천하는 것이 최고 기쁨입니다."

   
▲ 김재환 작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정착한 이후 수 없는 시행착오 이후 이루 말 할 수 없는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가치성은 수직상승처럼 존귀 하였으나, 욕계삼욕(欲界三欲) 먹고 자고 음욕은 수 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마치 지구가 태양을 기준으로 공전과 자전을 거듭하여 또 다른 물질의 탄생과 진화가 거듭됨과 같지만 그 물질의 근본에는 원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모양은 다르게 보여도 그 본질은 같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요. 이것은 우주의 기본 물질에서 모양만 바뀐 모습으로 다른 형태의 생물과 무생물의 탄생이지만 그 근본에는 하나에서 둘로 나눈 것이지 그 하나가 둘과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면 왜 나는 그림 그리는 화가가 이런 말을 서두에 꺼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화가의 개념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말하는 문화가 정립되기 전의 원시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간다면 당시에는 그림으로써 언어를 대표하고 있는 시대임을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그림은 산업화 이전의 하나의 역사이자 인류의 기록이 입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부터는 그림과 문화와 역사의 기록은 또 다른 독립적 체계로 발전 될 수 밖 에 없는 상항 이였기에 그림으로 서의 또 다른 변신은 거듭 할 수 밖 에 없는 현실로서 그 시초가 되는 사람이 바로 파플로 피카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피카소는 시각의 예술에서 생각의 미술로 바뀐 최초 시조 예술가이기 때문에 산업화로 인한새로운 미술의 르네상스라 생각합니다. 

   
▲ 김재환

따라서 제가 추구하는 예술성과 사상과 인생의 철학과 개념은 좀 더 광범위하고 자유롭게 추구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에는 개인이나 가족 국가도 그 진화의 발전상을 알 수 있듯이 그림에도 그 개념이 정립되기 전까지는 갑론을박의 논쟁이 있을 수 있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런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을 수평이라 칭합니다.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 볼 때지만 지구 밖에서 보면 둥근 형태 즉 공 모양이듯이 이것은 우리가 학문으로 잘못 배우고 알고 있는 지식이지요. 이로서 저는 기존의 그림의 개념을 기초를 두고 영(靈), 과 기(氣) 그리고 음양오행(陰陽五行)에 의한 풍수(風水)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의 기초는 그대로 살려 두고 감상도 하고 인간에게 좀 더 유익하고 복된 삶을 누리라는 뜻을 두고 시각예로 표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저는 실경 산수 즉 금강산이나 설악산 같은 고풍스런 그림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제가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온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은 지금은 제 그림에 대해 백인백해(百人百解)의 분분한 해석이 날 수 있고 미천한 개념으로 볼 수 도 있지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마치 갖 태어난 아기가 걸음을 걷고 싶어도 어머니 젖이 우선 이듯이 저 또한 현대 한국화에서 새로운 화풍과 현시대의 풍광을 남기고 홍익인간적인 측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해서 독창적 화풍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인간이 지구에서 정착한 후 문맹의 시대에는 과학이 발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과 같이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생노병사는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린 뭐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생소하고 획기적인 변혁에 대해 관심내지 이상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념도 없고 기초도 없이 우연히 일어난 획기전 사건이나 예술적 행위는 일시적 해프닝이라고 저는 봅니다.

   
▲ 김재환 화가 작품.

그 기초는 영혼의 집합체입니다. 우리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다 알고계시니까 표현하지 않아도 되겠죠. 하지만 “백견이 불여일행” 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일행이 불여백행”(一行而 不如百行) 즉 한번 하는 것 보다 백번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라는 표현인데요. 저도 예술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결과물이 진정한 작품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반복이 거듭되고 반복위에는 또 다른 기초, 또는 밑거름이 되어 그 작품을 빛나게 했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발달과 함께 해온 예술, 즉 그림이였다면 제가 추구하는 평면예술 즉 그림은 청년기 시대까지는 표현을 추구하는데 그 역점을 두었고 중년기 이후부터는 위에 말한 영(靈) 기(氣)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일필일력(一 筆一力), 일필일사(一 筆一思), 일필일혼(一 筆一魂)을 역점 두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영적교감(靈的交減)으로 전(傳)하고 행(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돼지가 그림을 감상할 수 없는 이유를 알면 제 그림도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김광용 시민기자  photoh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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