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평심(平心) 리뷰 (2)
연극 평심(平心) 리뷰 (2)
  • 관리자
  • 승인 200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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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유희를 위한 미학적 실험 [송현옥 연극 칼럼]
우주의 원리를 숫자로 이해하려는 수학자 로이! 그는 모든 형이상학적 의미를 성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서만 파악한다. 그래. 그는 유물론자야. 만져지고 맛으로 음미할 수 있는 대상만이 그에겐 존재하는 것이지. 그러나 철학적 사유의 방법론의 하나인 유물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미학적 단계'의 인간형이 아닐까?

남편의 시체 옆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갈매기]의 니나를 연기하는 저 와튼 부인은 그렇다면 어느 단계의 유형인가? 그녀는 '날지 못하는 새'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문학/연극으로 실존을 이해하는 인간형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비상하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 비극의 주인공,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인 남편, 그녀는 이런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이분법적 경계의 해체를 실제로(즉 경험으로) 이해하는 단계에 있는 것일까? 그 경험을 그녀는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고 몸으로 말하고자 하는데.

그렇다면 그녀는 연출의 자화상인가? 지금의 나의 상황인 것 같아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시를 중얼거리며 화투로 점을 치면서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저 여인은 또 어떠한 단계의 인간형인가? 초월주의자? 신비주의자? 관념론자? 앤더슨의 언어는 현실에 관점을 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존재에 대한 '울음'인 것 같다.

앤더슨이나 와튼 부인 모두 날개 잃은 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와튼 부인은 훨훨 날개 짓으로 욕망을 표현한다면 그녀는 새의 울음으로 날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아마 로이는 새가 얼마나 맛있는 동물인가를 생각하겠지?

앤더슨은 케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의 가장 높은 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놓인 인간상인가? 아니면 땅을 무시하고 하늘 만 바라보는 이상주의자?

이들 세 사람은 이렇듯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이해하려 하지만 항상 모순점에 부딪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오른쪽도 될 수 있고 왼쪽도 될 수 있는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3'이란 가장 완전하고 안정된 숫자라 했던가? 비록 이들 각자는 불완전하지만, 이들이 삼각을 형성할 때 그토록 로이가 원하던 우주의 안전은 지켜지는 것일까? 이러한 삼각의 관계에서 로이-앤더슨-와튼 부인-앤더슨-로이-부인-앤더슨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슬이 되어 이들은 순환을 한다.

나비의 날개 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나비가 장자가 되고 장자가 나비가 되듯이. 그러면서 세 인물들은 서로 각자의 논리로 세상의 이치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소통을 위한 대사가 아니라, 공허한 메아리 같기도 하고 언어의 유희 같기도 하다.

특히 '끝말 이어가기'식으로 행해지는 로이의 말장난은 인간의 모든 문명과 형이상학의 근간이 되는 언어 자체에 대한 희롱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들의 논쟁은 결국 서로의 목을 조르며 뒤엉키는 행위로 끝을 맺는데, 이는 결국 인간 논리의 귀결점은 이러한 혼돈일 뿐임을 시사하는 것 같다.

그때 묵자(그는 관찰자이기기도 하고 창조자 같기도 한 사람인데 가끔 조명은 그가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잡아주어 그의 존재를 관객에게 환기시킨다. 친절한 연출! 지나치게!)가 와서 시계를 돌린다.

흠! 또 다른 게임의 시작이겠군! 시계가 돌아가고, 다른 차원의 시간대로 들어가자, 이들은 자동인형과 같은 반복 동작을 계속한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 같은 배우들의 몸동작으로 인해 공연 시작 시에 묵자가 굴리던 무게 추의 동작이 의미하는 바를 이제야 알게 된다.

그러니까 중력으로 인해 지구가 돌아가고 인류가 형성되는 것이었구나! 개구리가 첨벙하고 들어가는 의미와도 연관되는 것인가?

* 필자 약력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미국드라마 석사
고려대학교 영국드라마 박사
미국 예일대학교 드라마스쿨(Yale School of Drama) 펠로우 (Special Research Fellow)
서경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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