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가의 ‘기도부흥’ - 17. 그것이 돈 때문인 줄 아시나요
브리스가의 ‘기도부흥’ - 17. 그것이 돈 때문인 줄 아시나요
  • 브리스가
  • 승인 2018.03.0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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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고 안 짓고는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있고 없고, 내가 얼마나 그 분과 함께 하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
▲ '그 힘 사용 설명서'의 저자 브리스가

성도들이 하는 큰 착각 가운데 하나

“부자 되면 타락한다.”

“그럼, 가난하면 죄 안 짓습니까?”

“너어어무 가난하면 믿음 생활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아.”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고, 지금은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계신 필자의 아버지 말씀이다. 목사가 무슨 그런 말을 하나? 아버지는 어느 추운 겨울 날,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던 한 노인을 부축해서 교회로 오셨다. 부모님은 교회헌금으로 그가 거주할 수 있도록 고시원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랜드 신우회에서 보내온 성금으로 그에게 틀니를 선물했다. 그리고 최노인, 아니 최성도님께 박스를 주워서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직접 돈을 주면 성도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에 최성도님이 박스 줍는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 두 분도 함께 박스를 주워서 주곤 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박스를 줍다 넘어져 팔이 심하게 부러지고 입원까지 하셔야했지만 최성도에게는 이 모든 사실을 비밀로 했다. 얼마 전, 최성도님은 목사님들께 통장에 5백만원이 넘게 있다고 웃으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설교를 들으며 눈물도 흘리곤 한다. 과연 최성도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그런 성도님들과 함께 목회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말이다.

“너어어무 가난하면 믿음 생활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아.”

가난 때문에 신앙생활을 못할 리야 있겠는가. 그러나 힘든 것은 분명 사실인 것 같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 되지 않으면, 심지어 계속 그런 상태가 일말의 발전 없이 유지되면 불신앙의 마음이 찾아 올 수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맞는가?”

‘아니야, 이런 생각하지 말아야지. 사탄아 물러가라.’

“하아!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맞는가?”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 죄송해요 주님. 에잇! 사탄아 물러가라.’

저는 이것을 싸구려 전투라고 부릅니다. 모름지기 영혼구원과 더 큰 비전을 위한 전투가 아니라 고작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다퉈야 하는... 가난하면 현실이 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라구요? 자녀가 먹고 싶어 하는 것 하나 못 사주게 된 부모로서의 입장, 돈 때문에 벌어지는 가족 간 생이별, 그런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양을 불렀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두 분께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며 느낀 소감이 그러했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믿음 생활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아.”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 본적 없는 사람이 전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거기서 오는 심리적 환난과 시험, 시련, 적어도 돈이 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과 갈등입니다. 돈 때문에 주일 성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고민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돈을 많이 벌어서 이번에는 선교헌금을 어디에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사람이 너무 잃을 것이 없으면 막나가는 마음도 생깁니다. 될데로 되라.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 만나고도 한 동안 그랬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하얀 피부 때문에 약해보였나 봅니다. 가만히 있어도 찾아와 시비를 거는 아이들. 싸우기보다는 당해주는 쪽을 선택하던 저는, 저희 집이 그렇게 된 뒤부터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도가 지나쳐 경찰서에 간적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으니까요. 싸움이 거듭 될수록 더욱 거칠어지는 성품, 처음에는 싸우는 것이 힘들더니 나중에는 참는 것이 힘들어져서 나도 나를 어찌할 바 모르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에도 경찰서에 간적이 있습니다. 스무 살 초반, 좌회전을 하려고 서있는데 버스운전기사가 저에게 어째서인지 욕설을 해왔습니다. 저 나름대로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버스기사는 분이 안 풀렸는지 내려서 제 머리를 툭툭 치더군요. 참지 못하고 또 경찰서에 가게 되었습니다. 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코와 얼굴이 심하게 부어있는 버스기사에 비해 너무도 멀쩡한 저의 상태는 한 눈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 짓게 했습니다. 버스기사가 저를 구속시키라며 소리를 질러 대던 그 순간, 저는 염치없게도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말없이 기도만 하고 있던 그 때, 조사를 하던 경찰관이 버스기사에게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로 언성을 높여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이렇게 어린애를 교도소 보내서 인생 망치고 싶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먼저 때렸다면서요. 그럼 쌍방폭행이에요. 아저씨가 얘 구속시키라고 하면 얘도 똑 같이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아니 이 얼굴을 보시고 얘길 하세요. 어떻게 쌍방 폭행입니까.”

“보니까 이 친구도 팔이 엄청 부었구만.”

경찰관의 말을 듣고 제 팔을 보니 오른쪽 이두박근 부위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저는 통증하나 없는 그 부위가 왜 부어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경찰관의 중재로 저는 경찰서를 나오게 되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 기도의 응답이라는 말은 차마 쓸 수가 없네요.

그렇게 풀려 난 뒤, 기도하려 눈을 감을 때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힌 십자가가 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죄송함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십자가를 외면하려 했지만 눈을 감으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 눌러 붙은 핏자국, 저의 주먹이 버스기사를 칠 때마다 귓가에는 둔탁한 망치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피로 얼룩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손발을 꽉 웅크리며 ‘잘못했습니다. 으으으,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회개는 한동안 밥맛도 잃을 만큼 혹독했습니다. 돼지저금통을 뜯은 돈을 들고 버스기사를 찾아가 최선을 다해 사과를 했고, 주님께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수 없이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또 그런 시험이 찾아왔다면 아마도 저는 또 그랬을 겁니다. 분명 저는 또 그랬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고치지 못하는 습관들이 있습니다. 함부로 다른 성도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 뱉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어떤 권사님처럼, 어쩌면 저 역시도 저만의 나쁜 습관을 평생 가지고 갔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다루시는 주님의 방법은 징계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돈 다운 돈을 벌기 시작했을 무렵, 저는 기도하면 응답주시는 하나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응답해 주시는, 기도와 응답의 선순환 속에서 저는 감히 예수님을 완벽히 닮아보고자 하는 소망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사내가 가만히 있는 저에게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 제가 없으면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상황이라 처음으로 싸움을 피했습니다. 저는 어느 덧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잃을 것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보잘 것 없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이유, 제가 잘못해도 너무 심하게 벌주시지 않는 이유를... 제가 잘해서 아니고, 세상에서 얻어터지기만 하며 살아온 저이기에 차마 불쌍해서 엄하게 대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렇게 임마누엘의 약속을 지키고 계시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멍청하리만큼 순하던 한 소년이 그토록 강퍅하게 변해버린 사실을 그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으시고,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저 마음 아파하시며 세상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방법으로 그를 다듬어 가셨습니다.

죄를 짓고 안 짓고는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있고 없고, 내가 얼마나 그 분과 함께 하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나의 삶, 나의 모든 상황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죄의 유혹 앞에서도 주님의 존재를 의식하게 됩니다. 업무적 성과와 신앙을 분리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마음껏 기도해서 주님의 능력과 임재를 느끼는 삶을 사는 것만이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고 주님을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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