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가의 ‘기도부흥’ - 16. 임마누엘,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브리스가의 ‘기도부흥’ - 16. 임마누엘,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 브리스가
  • 승인 2018.03.06 1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임마누엘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면 악용될 소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언약이다”
▲ '그 힘 사용설명서'의 저자 브리스가

임마누엘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해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죄를 지어도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분명하다면 주님은 떠나지 않으신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임마누엘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면 악용될 소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언약이다.

5W 1H.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주님은 함께 하신다. 우리의 행동에 이유를 묻지 않으시고 함께 하신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백성과 함께 하시는데 이유는 없다. 내가 잘해도 함께 하시고 죄를 지어도 함께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죄를 지을 수가 없다. 이따금 넘어지기도 하지만 임마누엘의 약속을 차마 이용할 수는 없다.​

‘이번에 내가 가게를 하나 내려고 하는데 하나님 뜻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내가 어디서 어느 직업을 선택하든 주님은 함께 하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는 사탄의 그림자 귀신이 아니라, 인격을 소유해서 우리 또한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느 대학을 가든, 대학을 가든 안 가든, 동쪽으로 이사를 가든 서쪽으로 가든, 어느 직업, 어떤 직장을 선택하건 주님은 함께 하신다. 그곳에서 당신이 기도하면 거기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 된다. 그러므로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내게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 기도했던 야베스처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1차원적으로 기도하는 자세가 영이신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솔직한 모습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 즉 선택권을 주셨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불신자들의 존재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에는 단 한명의 불신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가는 길에 주님도 함께 하신다. 나의 직업을 정해 놓으시고 안 가면 두들겨 패는 하나님을 상상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속신앙의 간접적인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은사님이기도한 #김남준목사님의 파격적인 말씀이 신학생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다.

“목사님, 저 계속 신학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가!가!가! 가서 일 열심히 하고 살아.”

“그런데 제가 서원을 해서...”

“괜찮으니까 가!”

“서원하고 안가면 하나님께 두들겨 맞을까봐.”

“아이고! 괜찮아. 가서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

유쾌한 목소리로 말씀하면 다른 신학생 동기들과 함께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속에는 성도의 미래를 염려하는 진심어린 조언이 담겨 있었음을 이젠 알 것 같다. 사명자의 길, 거창하게 순교까지 각오하라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각오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지육신 멀쩡한 건장한 청년이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반 백수로 늙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한다. 교회를 개척했는데 성도가 하나도 없어 목회를 접는다. 다른 교회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자니 목회자로서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사례비가 지급 되는 교회가 많지 않다.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다는 생각 때문에 취업도 하지 못한다. 다른 교회 예배에 참석은하지만 예전처럼 평신도들과 어울려 신앙생활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목사라고 말하자니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그렇다고 숨길일도 아니지 않은가.

필자의 주변만 해도 10년 넘게 직업도, 목회 활동도 하지 않고 지내 온 분들이 있다. 사모님들이 홀로 온갖 일을 다 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한때는 목회자의 길을 결단할 만큼 신앙심 깊었던 분들이 이제 평신도도 목회자도 아닌 생산성 제로의 상태로 나이만 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신학대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일하고 헌금도 하는 건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신학대학교에 처음 입학한 나는 신학생들끼리 유명 목사님 험담하는 것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저래도 되나?’

그러나 계속 듣다 보니 어느새 나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우선, 목사님의 험담을 들은 뒤부터는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예전처럼 은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설교를 들을 때, 예전처럼 하나님의 말씀이다 생각하며 집중해서 듣기보다는 기술적 평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인생을 좌우하던 생명의 말씀이 강의가 된 것이다. 공부는 되었을지 몰라도 은혜와는 멀어져갔다. 주님과의 첫사랑, 영적인 순수성을 잃고 말씀을 편식하는 까탈스러움이 생겨버린 것이다.

은혜 받지 못하니까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처음으로 찾아 왔다. 잘 알겠는데 행동으로는 못 옮기는, 은혜를 상실한 전형적인 크리스찬의 모습. 그것이 나였다.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가 안 되고, 성경 봐야 하는데 성경이 눈에 안 들어 왔다. 어떻게 해야 주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모르는 성도가 누가 있을까.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 처음 마주하게 된 그 상황이 나에게는 낯설었고 힘이 들었다.

때로는 식어가는 내 모습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따금 몸부림치며 기도를 하기도 했지만 한번 시작 된 영적인 냉각은 계속 진행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주님을 가까이 느낄 수 없었다. 사탄이 나에게 주입한 그 설교 비평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 나는 설교를 들을 때 비정상적일 정도의 ‘아멘’을 마음속으로 반복해야 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신학을 공부한 것이 어떻게 사용 될지 모르는 지금의 나로서는 내가 신학대학을 나온 것에 대해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말이다. 지금하고 있는 미얀마, 필리핀, 미자립교회 후원사역 역시 신학을 안 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고 실제로 다른 평신도 선교사님들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개론에 가까운 신앙서적을 낼 수 있었고 이렇게 칼럼도 쓰고 있지 않나?”

이렇게 말해 주는 분들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설교라면 평가할 줄 모르고 갈망하며 듣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