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일 목사가 젊은이들에게] 성경과 과학
[김종일 목사가 젊은이들에게] 성경과 과학
  • 이우윤 국민기자
  • 승인 2017.12.2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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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인 김종일 목사가 보는 성경과 과학의 균형

우리는 현대과학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과학정보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의 서술이 지금의 과학과 맞지 않는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창세기 1장을 보면 “궁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궁창은 하늘로 이해되기도 합니다만 딱딱한 금속판 같은 것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욥37:18,궁창은‘두들겨 때려서 펴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함). 그래서 그 위에는 물이 있고 궁창의 창문이 열리면 비가 내리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창7:11). 지금의 지식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1장과 2장을 보면 창조의 순서가 다릅니다. 1장은 식물-바다짐승, 새-육지동물-사람의 순서로 창조되었고 2장은 사람(남)-식물-땅의 짐승, 새-사람(여)의 순서입니다. 일부에서는 이 순서가 동일하다고 주장하지만 마소라 원문과 70인 역을 면밀히 살피면 1,2장의 순서가 분명히 다릅니다. 이렇게 순서가 다른 것을 보면 이 두 기사가 창조의 순서를 정확히 알려주는 기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창2장에서는 얼마의 기간 동안 사람과 식물, 동물 등이 창조되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2장의 창조가 창1장의 엿새째 날 하루에 다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천지창조, 과학과 성경에 의한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

 또한 창세기 1장은 당시의 독특한 셈족의 문학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셈족의 문학형태인 교차대칭구조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미상관식(수미쌍관식, 포괄구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다양한 변이형태도 있다고 합니다. 창세기 1장은 1(첫째날)-2(둘째날)-3(세째날)-1'(네째날)-2'(다섯째 날)-3'(엿새째 날)-4(칠일) 의 구조를 보이는데, 4(칠일/안식일)에 중심을 두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째 날이었다.”,“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후렴구가 반복적으로 들어갑니다. 이러한 반복은 모세오경의 일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는 문학적 현상이라고도 합니다.

 창2장부터 나오는 에덴 기사는 문자 그대로 사실로 보기에는 어려운 표현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뱀에게 내린 처벌로 ‘흙’을 먹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뱀은 흙을 먹지는 않습니다. 뱀이 흙을 먹었다는 기사는 다분히 상징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고대근동에서는 흙은 저승의 시체들이 먹는 음식이라고도 합니다. 아마도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벌받음에 대한 문학적 강조라고 보여집니다. 여하튼 이를 근거로 에덴동산 기사는 상징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흙으로 지었다는 표현도 과학적으로 보면 흙의 성분과 인체의 성분이 일치하지 않음을 볼 때 “흙으로 지으심” 이라는 표현은 뭔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당시의 우주관을 토대로 서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개정 빌 2:10)” 여기서 “땅 아래” 라는 표현은 당시 우주가 하늘과 땅과 땅 아래(스올)로 되어 있다는 당시의 우주관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서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닙니다. 만일 이 말씀을 토대로 땅 아래 어떤 존재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연구 조사한다면 이는 넌센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정보를 그대로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는 표현도 당시의 인식을 그대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원래 씨앗은 죽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생물지식만 있어도 우리는 씨앗이 죽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씨앗이 죽었다가 싹이 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겨자씨가 가장 작다는 말씀도 엄밀히 말하면 사실과 다릅니다. 겨자씨보다 작은 씨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겨자씨가 당시에 가장 작은 씨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일으키는 바람을 꾸짖으신 일도 있는데, 당시에 바다에는 악한 영들이 큰 파도를 일으킨다는 생각들을 하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성경 도처에 바다에 관한 그런 표현이 많이 서술됩니다. 실제로 바다의 풍랑이 악한 세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자연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사람들이 바다의 풍랑을 일으키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믿고 사는 때였으므로 그들의 사고방식에 맞추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은 악한 세력들을 제압하시는 능력있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입니다.

 욥기에 보면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욥 26:7)”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북쪽(북편)은 하늘을 의미하여 이를 허공에 펼쳐서 하늘을 만드신 것으로 생각하였고. 또한 땅을 매단다는 것은 고대근동에는 태양신 샤마쉬가 땅을 매달아 붙잡고 있다는 사고가 있었는데 역시 이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성경의 서술들을 면밀히 보면 현대과학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리워야단에 대하여도 간혹 이를 공룡 중의 하나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공룡과 인간이 같이 살았다는 쪽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리워야단은 고대 가나안신화의 머리가 일곱달린 괴물을 말합니다.

리워야단의 머리(들)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개정 시 74:14)

 여기에서 머리는 모든 사본과 역본에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즉 가나안 신화의 괴물과 상응한 표현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듯 고대근동의 사고나 표현들을 모티브로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를 두고 리워야단이 실재 있었던 생물체로 보면 안될 것입니다. 다만 이와 유사한 큰 동물을 모티브로 이런 신화적 괴물로 표현했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뱀이 사탄은 아니지만 사탄으로 상징시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우주(지구)의 연대와 성경의 역사를 보면 그 차이가 너무나 많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우주과학에 의하면 우주의 연대가 아무리 작게 잡아도 수억 년은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고 안드로메다 은하는 250만 년 전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연대는 기껏해야 만년이내인데 우주의 연대와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지구의 나이도 최근의 동위원소연대측정에 의하면 수억 년 이상 된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기록들을 문자적, 사실적으로만 보면 안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성경 안에는 많은 문학양식들이 있고 사실을 정확히 보도하는 기록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역사, 신학적인 문학으로 보아야한다고 다수의 성서신학자들은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성경의 표현은 저작 당시에는 당연시되던 그 시대의 지식, 정보, 생각들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문제는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적응(accomodation)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적응이란 독자의 수준에 맞추는 것입니다. 일종의 눈높이인 것입니다. 어린이에게 뭔가 설명하려면 어린이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이나 유치한 발음을 하는 엄마의 방식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만일 적응의 방식이 아니면 당시의 독자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글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든지, 수많은 은하가 있다든지 하는 이런 지금의 우주에 관한 정보를 사용하였다면 고대의 독자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오히려 그 문서들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여 폐기처분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은 독자들과 전혀 소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저자들도 현대과학정보를 알지 못하였지만 그런 상태를 그대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방식으로 성경은 기록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적응방식은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성경을 현대과학과 일치시키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특별한 계시이므로 현대과학과도 상충되지 않아야 한다는 지극히 자의적인 전제들을 내세웁니다. 그러다보니 본문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성인우주론 등등은 현대과학과 창세기 1장 본문을 일치시키려는 가설들인데 이런 해석이 성경본문과는 절대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점들입니다. 특히 성인우주론은 실제연대와 겉보기 연대가 다르다는 주장으로 하나님께서 뭔가 진실하지 못한 분으로 치부될 우려가 큽니다. 성경은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과학정보를 토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일치주의해석은 타당성이 없는 것입니다. 일치주의자들은 성경이 현대과학과 맞지 않으면 성경은 오류투성이의 고대 문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우려하여 성경을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일치주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이 그 시대 사람들을 위한 방식으로 그렇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의 역사적 실재와 십자가사건, 그리고 부활과 초대교회의 형성을 사실로 증언해줍니다. 이것이 가장 분명한 사실(팩트)로 존재하는 한 어느 누구도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러한 팩트들을 기반으로 형성된 신학사상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독자들이 성경을 읽으실 때에는 고대의 독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점을 꼭 명심하면서 지금 우리가 가진 지식(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더라도 어색해하시거나 곤란해하실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담의 기사를 읽으시면서 현대 인류학과 연결시키려하지 마시고 인간의 실존이 아담의 모습과 동일한 점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그 아담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생명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에 대하여서는 현대 생물학이나 인류학에서 밝혀낼 일인 것입니다. 과학에서 분명한 사실로 밝혀지면 우리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 정보(사실)에 걸맞는 해석을 바탕으로 바른 신앙(신학)을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대구성민교회목사, 김종일제통(통증의학과)의원 원장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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