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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가의 ‘기도부흥’ ⑨ 더치페이를 연습하다예수 그리스도 없는 나눔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저는 배웠습니다
▲ '그 힘 사용설명서'의 저자 브리스가

눈을 감으면 필리핀 빠야따스의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아이들이 그려질 때가 있다. 하나님의 비전은 텔레비전보다도 생생해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때문에 눈물짓게 된다. 그러나 이 눈물은 본래부터 나의 것은 아니었다. 10만원 안 되는 돈으로 100명이 먹을 수 있는 닭죽을 끓일 수 있고, 그것을 먹기 위해 모인 아이들과 어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필리핀도 지금은 과거보다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선물이나 밥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복음을 듣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 존경하는 이웃 삼월이님을 통해 ‘나눔’에 대해서도 다루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눔의 계절이네요. 부끄러운 고백. 저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계산적인 사람이긴 합니다. 내가 준만큼 또 내가 쓴 만큼 어떤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전히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 부분이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모습임을 압니다.

오래전부터 부자들을 관찰해 왔습니다. 관찰대상은 흙 수저 출신의 하나님의 부자. 주변에서 만나기조차 어려울 만큼의 부를 축적한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특징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

1. 하나님을 사모한다.

2. 기도를 많이 한다.

3. 부유함을 추구한다.

4. 나눔을 실천한다.

2번까지 하시는 분들은 많습니다. 3번에서 숫자가 조금 줄어들지만 그래도 3번까지 실천하시는 분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4번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사람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따금 소개를 통해 사업관련 자문요청을 해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 같이 돈을 벌면 선교헌금 많이 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헌금은 어떻게 해 오셨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을 못합니다. 한 번도 선교헌금을 해 본적 없던 분이 돈 벌면 할 테니 도와 달라는 말, 어쩐지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조금도 나누지 않는 사람의 기도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실까요. 우리에겐 주님이 주신 영성과 지성이 있어 하나님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아주 가까이서 하나님의 부자들을 보며 1~3번 외에도 4번의 필연성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주님, 저희 집 사정 아시잖아요. 등록금 주시면 신학대학 입학하겠습니다.’

저의 당돌한 기도는 부모님께서 우연히 기도원에서 알게 된 김경숙 교수님을 통해 즉시 응답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부모님이 산에서 내려와 정착 할 수 있도록 강남에 있는 자신의 건물 옥탑을 무상으로 제공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준이가 신학대학 간다고 하면 내가 등록금은 내 줄게.”

그렇게 꼼짝 없이 신학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혈혈단신 이군을 만났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없고, 영양부족으로 척추가 조금 휘었다던 그는 자주 아프기도 했습니다. 동인천에 살던 이군은 이따금 형이 사주는 갈비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2시간 남짓 거리를 마다 않고 오곤 했습니다. 이군을 만날 때면 저는 집에서 밥을 든든히 먹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갈비탕은 언제나 1인분, 제겐 두 그릇을 살만한 돈은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까지는 없었습니다. 당시 저의 전 재산은 5만원 미만에서 왔다 갔다 했었더랬습니다. ‘잘 먹었다.’는 인사 외에는 다른 답례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졸업 후, 1번의 이메일을 끝으로 따로 연락을 받은 적도 없지요.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저는 초라한 지갑을 열곤 했습니다. 순종하는 횟수와 함께 지갑을 열 때 들던 마음의 저항도 점점 줄어들어 갔습니다.

처음으로 특별헌금 700만원을 새노래교회와 행복한교회에 드리던 날이 기억납니다. 마음에 감동은 오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액수라 갈등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리고 나니 확실히 기뻤습니다. 기쁨으로 드린다던 선배님들의 간증,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 오토바이 택시, 트라이시클 후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실한 성도 가정에 공급되어 가정의 안정과 그 십일조로 교회자립을 기대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쉽게 결정 할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 필리핀, 한국의 미자립교회, 그렇게 점점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금액을 드리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많이 해서 수입이 늘었는지, 수입이 늘어서 헌금을 많이 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을 하며 선순환을 했다는 것.

학원을 운영할 때, 저에게 찾아와 노하우를 묻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자료하나 감추지 않고 모두 내주고 심지어 제 돈으로 밥까지 사주며 도와주었지요. 그 중에 극소수만 지인으로 남고 또 일부는 연락조차 없습니다. 실수로 학원을 잃고 보험세일즈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도 영업노하우를 묻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중에는 도저히 영업을 할 수 없는 복장을 갖춘 분들이 있었습니다. 찢긴 구두를 신은 김씨, 단벌 셔츠를 세탁 않고 입고 다녀 심한 냄새로 사원들조차 함께 있기를 꺼려하던 정씨, 정장부터 구두까지 모든 아이템이 낡고 오래 된 또 다른 김씨였습니다. 저는 저보다 나이가 많던 세 분에게 구두, 정장, 셔츠를 제공하고 식사도 사곤 했습니다. 같은 평사원이었고 그들이 잘 되도 제가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은 전혀 없었지요. 얼마 후, 정씨는 차비가 없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돈 거래는 할 수 없다고 하며 이따금 5만원권 지폐를 주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구두를 받은 김씨는 여전히 저와 좋은 인연으로 교회 나가라고 하면 대답이라도 잘 해 줍니다. 정씨는 연락이 없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셋트를 선물 받은 또 다른 김씨는 제가 끝까지 자신을 돕지 않았다고 저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년간 함께 하며 저 한사람이 발생시킨 매출로 5천만원~1억원 사이의 금액을 그가 벌었다는 것을 지점장님과 온 사원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열매도 있었습니다. 공부를 너무 싫어하던 세 번째 김씨, 저는 회사 임원들처럼 김씨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금융은 공부가 업무의 일부인데 너는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하니 이 일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고정급 받는 일이나 한번만 공부해도 되는 상품판매직을 알아봐.”

착하기만 한 김씨는 기본급이 전혀 없는 회사에서 소득 없이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말의 뜻은 이번 주 비즈니스 칼럼에서.) 주일마다 저와 함께 교회를 다니고 저와 성경공부도 하던 김씨는 얼마 후,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역교회에 출석했고 결국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김씨가 교인이 아니라 성도가 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세 번째 김씨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있다면 너를 주님께로 인도 한 걸 거야.”

몇 년 전, 그동안 살면서 나눈 것들에 대한 중간정산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전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사람들에게 쓴 커피 값, 밥 값, 기타지출, 얼추 계산해 봐도 소형 세단 값이 나왔습니다.

‘아, 그 돈을 선교지에 보냈었더라면...’

함께 소비 된 시간, 열정, 그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소득은 참으로 비효율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그 때부터 조금씩 더치페이를 연습하며 수 없이 다짐했습니다.

‘주님의 강권적인 푸시가 있지 않는 한,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의 최대 효율성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따라 ‘그 힘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저에게 듣고 싶어 하던 ‘성공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제가 그 도구를 통해 그토록 전하고 싶어 하던 ‘예수님’도...

주님은 책과 블로그를 통해, 한 사람만을 향하던 저의 시간과 열정이 다수를 향하도록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기도한 ‘최대효율성’에 대한 뚜렷한 응답. 가장 큰 기쁨은 이제는 저도 받는 것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여러분들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성공이 그러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없는 나눔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저는 배웠습니다.

‘나중에 부자 되면 교회 갈게요. 나중에 부자 되면 헌금 할게요.’

지금 주님을 전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더군요.

1~3번을 실천하고 계시다면 4번도 실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크기는 4번의 크기와 반드시 비례합니다. 아무도 돕지 않고 누군가의 삶 속에도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저는 서운한 마음도 경험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저의 삶에도 아무런 변화는 없었을 겁니다.

브리스가  4533k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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