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일 서평] " 칭의와 정의(새물결플러스)"
[김종일 서평] " 칭의와 정의(새물결플러스)"
  • 이우윤 국민기자
  • 승인 2017.11.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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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가는 지름길-

 

 

 

 

 

 

 

 

 

 

 

 

 

 

 

 

 

 

 

 

 

 

 

 

 “칭의”는 기독교 구원교리의 아주 중요한 핵심주제이다. 특히 개신교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신칭의는 종교개혁의 원동력이었지만 최근 한국 교회는 이 교리가 선한 삶(행위)이 결여된 피상적 신앙고백만으로도 의롭다함을 얻는 천박한 교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특히 개신교계에 침투한 믿음과 삶의 괴리현상은 이신칭의교리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칭의론에 대한 바른 이해는 구원 뿐 아니라 신자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칭의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칭의론이 과연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진리인지에 대한 질문이 대두되고 이신칭의교리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교회의 타락을 막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의문이 팽배한 가운데 느헤미야기독연구원에서 “칭의와 정의”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580여 면에 걸쳐 칭의와 정의를 논하고 있어서 규모와 깊이가 만만치 않다. 14명의 신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4부에 걸쳐 성경에서 칭의와 정의, 교리사와 조직신학에서의 정의, 칭의론의 현대적 논의, 칭의론의 사회윤리적 논의를 다루었다.

 이 책은 단순히 종교개혁을 기념하고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칭의론에 대한 면밀한 신학적 조명을 통해 이신칭의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평가하며 더 성경적으로 바로잡는 방향으로 집필되었다. 여기에 참여한 신학자들은 교파와 전공, 신학적 견해에 차이가 있지만 “칭의와 정의”의 주제에 맞게 집필하였다.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견해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우선 한국개신교회가 갖고 있는 칭의론교리는 신자의 구원에서 선한 행위를 배제하여 “값싼 은혜의 구원”, 신자의 삶에 실질적인 의로움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형식적(선언적) 의로움에 멈추는 기형적 구원교리로 전락했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한다. 특히 칭의론이 개인의 내면적 죄성으로부터의 구원으로만 인식하여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초래하였음을 다수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2.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바른 성경적 이해를 위해 몇 몇 저자들은 구약에서 말하는 구원과 신약의 칭의와의 관련성을 심도 있게 논한다.

구약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는 칭의교리의 원천이다. 구약은 구원은 하나님의 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의의 내용은 공의와 정의를 행함이다. 공의와 정의는 같은 개념으로 개인적,사회적 의를 포괄한다. 예수님은 물론 사도바울이 언급한 의는 구약의 공의와 정의를 함축한다. 신약에서 의(디카이오슈네)를 justice로 번역하지 않고 righteouness로 번역한 것은 구약의 의의 개념과 맞지 않는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한 교리적 인식이나 표피적 신앙고백이 아니라 신실함,충성 등의 개념을 가지는 어휘인 점을 볼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말씀)에 대한 확고한 충성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런 믿음(충성)은 의를 행함과 괴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구원(하나님의 의)은 공의와 정의를 행함이다. 언제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으로 한 걸음 나아갈 때 그는 그 가운데서 살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 곧 구원이다. 이는 공적을 쌓아 의롭게 되는 행위구원론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바울이 뿌리를 둔 원천이 구약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바울이 말하는 의는 구약의 정의와 공의를 행함이 삶이며 구원이다. 구원의 도리로서 칭의의 실제내용은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정의를 행하는 의로움이다.

 일부에서는 바울의 칭의론이 행함이나 정의실현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도외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저자들은 바울의 칭의론이 결코 행함이나 정의를 무시한 것이 아님을 저자들은 밝히고 있다. 특히 로마서의 핵심은 후반부인데 여기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을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믿음이 강한자와 약한자의 차별 또한 제거하면서 하나님의 환대를 통해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구원)시에 정의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였는지를 심판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을 보면 신약성경은 칭의(구원)을 말하면서 항상 정의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3. 저자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에 대하여 심도있는 분석을 하였다. 먼저 루터의 칭의론은 행위없는 믿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루터는 “참된 믿음과 참된 사랑의 행위는 그리스도 때문에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믿음의 열매는 삶의 전 영역에서 맺는다. 의이니 시공을 말론하고 삶의 모든 현장에서 의의 열매를 맺어야한다. 칭의의 신앙은 이웃사랑으로 연결되며 시회에서는 정의를 실천해야한다.”는 칭의교리를 말했다고 한다. 루터에게 칭의는 믿음으로 의롭게됨을 말하며 칭의는 하나님의 경제를 준수하는 것인 동시에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공의로움을 돌려드리는 행위이며 맘몬의 정치경제학의 지배체체에 도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여 설명하였지만 칭의,예정,성화는 통전적으로 결합하였다. 칼뱅의 칭의는 개인주의적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복음의 빛에서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불의와 폭력구조를 날카롭게 분석하였다.칼뱅의 사회적 휴머니즘은 부하들을 사회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부의 탐욕에서 해방시키고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게하며 가난한 자들이 정당한 노동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오는 권리를 추구하는 자들이 되게 한다.”고 하였다.

4. 저자들은 현대신학자들의 칭의론에 대한 언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몇 몇 학자들의 견해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바르트는 인간세계의 정의는 언제든 바벨탑이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의만이 절대적인 정의이다. 인간의 정의는 하나님의 의로 칭의되어야한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을 의롭게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지니며 인간의 정의로운 행동을 요청한다.

본회퍼는 “정통루터파의 믿음과 행위의 틀에 의문을 제기하고 복음이 값싼 은혜의 구원으로 전락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다는 면에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반드시 인간의 책임있는 순종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합당한 행위 즉 뒤따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몰트만은 “칭의론은 한편으로는 죄인을 의롭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권리를 빼앗긴 자들의 권리를 세우는 하나님의 의를 기반으로 한다. 칭의와 사화정의는 하나님의 의를 구성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님의 의는 구조적 죄를 극복하고 평화를 창조한다.”고 하였다.

던은 “칭의교리에 대한 개신교적 통찰을 배제할 이유는 없으나 칭의교리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적이며 사화적 함의를 분명하게 밝혀서 그것들을 보충해야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본서를 개괄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이 책은 이신칭의교리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교리이며, 이 교리는 개인적 윤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밝혀준다. 모름지기 신학은 교회와 신자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야 한다. 특히 교회가 처한 상황에 답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신학의 사명이다. 칭의와 정의를 심도있게 다룬 이 책은 칭의교리를 예리하게 성찰하면서 동시에 한국교회가 칭의론을 오해하고 그릇된 길에 빠져있음을 강하게 지적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떤 신학이든 성경을 바로 해석하지 않으면 호소력이 없다. 이 책은 철저하게 성경을 주해하면서 칭의와 정의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논한다.

  한국교회의 부패의 근원에는 루터의 칭의론이 있다는 비난이 있다. 오직 믿음만 외치다보니 행위가 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참된 믿음과 참된 사랑(행위)는 그리스도 때문에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하였고 정치적 정의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은 일정한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불의가 행해지고 있음을 볼 때 정당한 제안과 요구를 할 수 있고 그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양심에 따라 저항할 수 있다고 하였다. 루터는 성만찬은 사랑의 성만찬이 되어야 하는데 비참하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자들의 불의한 고통에 슬픔을 느껴야 한다. 당신이 더 이상 할 수 없다면 당신은 저항하고 일하고 기도하면서 이런 사실에 대해 마음 속 깊은 동정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죄용서의 은총을 입고 칭의될 때 거기서부터 우리는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는 활동적 삶으로 나아간다고 하였다.

  루터의 칭의론은 분명히 정의를 포함하거나 정의실현의 동력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루터의 칭의론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칭의론을 잘못 이해하고 가르쳐온 것이 심각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구원, 칭의의 교리를 깊이 점검해보는 자극과 도전을 준다. 다만 이 책의 저자들은 개혁주의 신학과 다소 거리를 둔 신학자들이 다수이다. 저자들 중에서 개혁주의 신학자로써 칭의와 정의 문제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개혁주의 신학은 정의에 대하여 관심이 적고 칭의를 개인적,실존적인 면에 많이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아울러 개혁신학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공의와 정의는 아브라함(가족,권속)을 부르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라고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신 것이다, 이신칭의교리의 핵심은 하나님을 믿는(신뢰,충성) 백성들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의(공의,정의)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듣고 있지만 정작 그 의가 정의를 내포한 것이라는 것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와 사회에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칭의와 정의”, 이 중차대한 교리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은 이해는 한국 개신교회가 보다 더 하나님의 의(공의와 정의)에 다가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김종일, 대구성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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