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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의 신학- 경건한 성소와 깨끗한 침소

얼마 전 성경을 읽다가 색다른 감동을 느낀 일이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만일 다른 아내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첫 번째 아내에게 음식과 옷을 주고 잠자리를 함께 해야 한다는 구약성경의 말씀이었다. 옛 아내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동침하는 것을 끊지 말라는 하나님의 배려가 매우 감동이 되었다.

언제가 주례 때, 목사는 결혼 전에는 두 사람이 한 이불을 덮을까 걱정이요, 결혼 후에는 두 사람이 한 이불을 덮지 않을까 걱정이라 했더니 신선한 주례사였다는 인사를 들었다. 하나님이 버림받은 여자의 잠자리까지 걱정하시는 분이니 목사들도 부부의 잠자리 걱정도 해야 한다며 함께 웃었다.

침실은 결혼한 부부에게 허락된 신성한 곳이다. 성경은 부부의 침소를 더럽히지 말 것을 권고한다. 정결한 침소는 경건한 자손을 낳고 하나님은 그 경건한 자손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계승시키신다. 이 신성한 침실이 위협을 받고 있다. 그 위협은 결혼 전의 문란한 성관계나 결혼 후의 간통이나 섹스리스로 나타난다. 다양한 성적 이탈과 섹스리스라는 상반된 경향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현대인의 복잡한 삶의 단면을 보여 준다.

성적 일탈에 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일반인들이 아닌 종교인들의 일탈이다. 적어도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간음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의 사람들도 오늘의 성직자들도 성적 이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성군 다윗을 비롯한 제사장들도 간음의 죄에 빠져 들었으니 중독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인가.

 신학적으로 성적 결합은 인간이 최초에 하나님과 가진 강한 연합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과 인간과의 연합을 부부의 성적 결합을 통해 경험하도록 하셨다. 성적 결합은 인간이 다른 사람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다. 동성 간에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하나 됨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또 특수한 사람들 간에 특별한 연합의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 관계도 남녀 간의 성적 결합을 통한 하나 됨의 경험에 비할 수 없다.

신학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그 하나 됨을 사모한다. 인간은 죄를 짓기 이전에 하나님과 가졌던 그 ‘온전한 하나 됨’을 갈망하는 것이다. 이런 온전한 하나 됨을 우리는 성소와 침실에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한 연합의 경험과 부부의 하나 됨을 통해서 인간의 온전한 하나 됨의 갈망이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신앙을 가지고 2년 정도 지난 후에 경험하게 된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 하나 됨의 신비를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10 여년 후 결혼을 통해 부부의 하나 됨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제도적인 종교나 법적인 부부라는 형식이 아닌 은밀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만남을 통해 하나 됨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성소와 침실은 닮았다. 그곳은 둘이 하나가 되는 곳, 둘 만의 온전한 하나 됨을 경험하는 곳이다. 경건한 성소과 깨끗한 침소만이 그 하나 됨을 경험하게 해 준다.

이우윤 국민기자  wyrh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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