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가의 ‘기도부흥’②, 과거를 바꾸는 방법
브리스가의 ‘기도부흥’②, 과거를 바꾸는 방법
  • 브리스가
  • 승인 2017.11.02 13: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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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당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와 있다.
▲ '그 힘 사용설명서' 저자 브리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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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운동에는 공통점이 많다. 예를 들어 운동하기 싫은 것을 극복하다 보면 체력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도 함께 강해진다. 기도하기 싫은 것을 극복하면 영성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도 강해진다. 하기 싫다고 계속 안하면? 습관이 된다. 하기 싫어도 계속 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싫지만은 않다. 힘들게만 느껴지던 것에서 나름의 재미도 발견한다. 기도도 운동도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극한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할 때 본격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개 더 !”

휘트니스 센터의 퍼스널 트레이너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일 것이다. 간신히 목표로 하는 개수를 채우면 그들은 외친다.

 “자, 마지막으로 한 개 더!”

한 개를 더해도 순순히 놓아주지 않는다.

 “한개만 더, 한 개만 더!”

그렇게 반복하다 정말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 없을 때 비로소 그들은 바벨을 붙잡아 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몸이 극한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들어올리는 ‘한 개 더’가 근육의 성장을 가져 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육은 더 큰 힘을 쓸 일이 생겼다고 판단 될 때 몸에 들어 온 영양소를 저장이 아닌, 성장을 위해 쓰기로 결정한다.

 “휴! 죽을 뻔 했네. 아무래도 근육 량을 더 늘려야겠군.”

 “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겁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다 쏟고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하겠는데 한 번 더 힘을 내서 도전해 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뚜렷한 성장을 가져온다.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기도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다. 바쁜 시간을 무릅쓰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갈 때, 이젠 더 이상 기도할 힘도 의지도 없다고 느껴질 때, 한 번 더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는 기도의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신앙은 눈에 띄는 성장을 반복한다.

사실 성장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재미가 있다. 성장은 본래 재미있는 것이다. 가상현실의 캐릭터를 키우는 것도 재밌어서 사람들은 중독된다. PC방에서 며칠 간 잠도 자지 않고 게임을 하다가 죽은 청년의 안타까운 소식을 기억할 것이다.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은 그 재미가 중독을 야기할 정도다. 지속적으로 그 게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게임 속 캐릭터의 성장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본래 무엇인가를 성장 시킨다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현실 속의 나는 현실의 나를 자양분으로 하기에 캐릭터가 성장하면 할수록 실제의 나는 죽어간다.

현실의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 아직, 재미를 발견 못해서 그렇지 현실의 내가 성장하는 모습은 훨씬 더 재미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어떤 게임도 배우기 전에는 재미가 없다.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게임을 배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나를 키우는 그 재미에 빠지면 마치 온라인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끊을 수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운동중독, 일중독이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스스로가 발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실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것이 보인다. 바디빌더들은 오늘 내가 하는 운동으로 보다 더 좋은 근육을 얻게 될 자신의 미래의 몸을 믿음으로 확신한다. 업무에 밤낮으로 몰두하는 이들은 오늘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얻어질 풍성한 성과들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그 믿음과 확신이 남들에게는 재미없는 업무를 끊을 수 없는 재미로 바꾸어 준다.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의 징표는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변화에서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보다 위치적 우위에 있다고 느낄 때 뭔가 잘 보이고 싶다는 기대심리와 함께 자신도 모르게 위축이 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위축’은 오히려 본인의 이미지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뿐이다. 그런데 기도생활이 나의 주관자가 전능자임을 항상 잊지 않게 만들어 준다. 그 전능자 하나님의 동행, 임마누엘의 확신이 몸에 밴 사람은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예의와 당당함이 조화를 이룬 사람은 특별한 아우라를 풍긴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바라 볼 때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기도를 하면 가장 먼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그러면 이전에 좋던 것이 예전처럼 좋지가 않다. 믿음이 눈을 뜰 때, 본능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거시적 관점이다. 도박에 미친 사람은 이 짓을 계속하면 나중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가 보인다. 그러면 결국은 중단하게 된다. 성실히 일하는 사람 또한 이 단순한 하루가 쌓여 가져오게 될 미래의 풍성함이 생생하게 보인다.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신바람이 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미세한 발전과정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양자물리학의 한 이론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과거의 나, 현실의 나, 미래의 내가 모두 연결 되어 즉시즉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불성실하면 오늘의 나도 미래의 나도 그러하다. 오늘 내가 성실하면 미래의 나도 그러하다. 서서히 점진적으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선택이 미래의 나를 즉시 바꾼다. 그렇다면 과거는 어떨까. 과거는 바꾸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과거도 바꿀 수 있다. 여러분은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당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와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과거의 한 지점에 서 있다.

못 이룬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들에게 좀 더 따뜻하지 못했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사치스러웠던 과거, 불성실했던 과거, 그리고 기도하지 않았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곳에 왔다.

문득, 베드로 후서 3장에 기록 된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또 2천 년 전에 한 번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해 그 이전과 이후에 태어난 전 인류에게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어쩐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그러나 성경 외적인 도구로 성경을 깊이 분석하는 것은 삼가고 싶다. 분명한 것은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블로그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priscalov/22113042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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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7-11-02 21:28:25
만유인력이 우주의 모든 물체에 실시간으로 작용하려면 발사된 만유인력이 무한대의 거리까지, 무한대의 속도로, 무한대의 시간 동안, 무한개의 물체들에게 도착해야 하는데 그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과학자들도 반론을 못하고 있다. 반론을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면 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