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일관계: 쿠다라(百濟) 야마토(倭)' (1)
'고대 한일관계: 쿠다라(百濟) 야마토(倭)' (1)
  • 홍원탁
  • 승인 2003.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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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탁 교수의 역사산책]
(1) 야마토 왕국의 창건 시점

대부분의 일본 사학자들은, 야마토 왕국이 4세기 말경의 오오진(應神)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712년에 완성된 고사기와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에 의하면, 오오진은 야마토 왕국의 15대 왕이다. 일본서기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오오진은 서기 390년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쯔다 소오끼치(津田左右吉: 1873-1961년) 교수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오오진 이전의 왕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은, 야마토 왕족을 태초로부터 내려오는 지배자로 만들기 위해, 모두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쯔다가 첫 번째로 제시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보면, 시조 진무 이후 신공 왕후의 남편이라는 추우아이 왕까지의 (즉 2대부터 14대 왕까지의) 13명의 왕들은, 단지 죽은 다음에 만들어서 부여된 시호(和風諡號)로만 기록이 되어 있다. 그 명칭들을 검토 해 보면, 전혀 각자의 고유성이 없다. 반면, 15대 왕이라는 오오진 부터는, 각기 왕자 때부터 실제로 사용된 특유한 이름을 그대로 왕의 시호로 기록했다. 오오진의 왕자 때 이름은 “호무다”이고 (和風)시호도 “호무다”이다. 진무나 오오진이라는 중국식 명칭들은, 고사기와 일본서기 원본에 기록된 명칭들이 아니라, 8세기 후반에 새삼 중국식(漢風)으로 만들어 부친 시호들이다.

쯔다가 두 번째로 제시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14대 왕이라고 하는) 추우아이 까지의 왕위 승계 형식을 보면, 단 한번의예외도 없이, 전적으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대 중국왕조의 전통인) 부자간의 왕위 승계란, 7세기 후반 텐지 왕 이후에도 제대로 확립이 안 되었던 것이다. 오오진 이후 텐지 이전의 왕위 승계는 대부분 부자간이 아니라 (투르코-몽골 유목민족의 전통인) 형제간의 승계이었다.

이와 같은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쯔다는 오오진 이전의 왕들에 대한 기록은 모두 허구라고 주장했다. 나는 야마토 왕국이 오오진(호무다)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쯔다가 제시하는 근거에 추가해서) 네 가지 더 제시하려 한다.

첫 번째의 추가 근거. 쯔다는 오오진 이전의 왕위승계가 모두 부자간의 승계라는 특이점에 의혹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왕위승계가 아주 “평화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오오진 이후를 보자. 오오진에서 닌토쿠로 승계될 때, 한바탕 골육상쟁 유혈극이 있었다. 닌토쿠에서 리츄우-한제이 형제로 승계되어가는 과정에서도 골육상쟁 유혈극이 있었다. 한제이에서 닌교오로 승계될 때, 유혈극은 아니지만, 아주 특이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닌교오에서 안코오-유략쿠 형제로 승계되는 과정에서도, 또 한바탕 골육상쟁의 유혈극이 있었다.

유략쿠-세이네이 에서 켄조오-닌켄 형제로 승계될 때에도, 또 닌켄-부레츠 에서 케이타이로 승계될 때에도, 아주 특이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형제간의 왕위승계가 대부분이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왕위승계가 항상 순탄치 못했다는 점이, 오오진 이후의 고사기-일본서기 기록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준다.


두 번째의 추가 근거.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14대 왕이라는 추우아이 가 죽었다는 해로부터 15대 왕이라는 오오진의 즉위까지 장장 71년에 달하는 공백 기간을, 자타가 공인하는 가공의 존재인 신공 왕후가, 섭정을 하며 채우고 있다. 따라서 오오진(호무다)부터가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이 더욱 합리적으로 보인다.

세 번째의 추가 근거. 712년에 고사기가 편찬 완료되자, 야마토 조정은 즉시 전국에 명을 내려, 각 지방의 현황과 옛부터 전해오는 온갖 이야기 등을 기록해 올리도록 했다. 이들 기록들은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를 편찬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들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하리마 풍토기는, 713-715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믿어진다. 이 하리마 풍토기를 보면, 독자로 하여금 호무다가 야마토 왕국의 시조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수많은 기록들이 있다.

예컨대, 호무다는 수없이 순행과 사냥을 하고, 수많은 지명들이 호무다의 사소한 언행들과 연관 지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다른 왕들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 언급이 없다.

네 번째의 추가 근거.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모든 왕들 중에 유독 진부와 오오진(호부다)만이 규우슈우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했다. 진무는 천손 니니기가 하늘에서 내려운 후에, 또 오오진은 모친(신공왕후)이 한국으로부터 배를 타고 와서 큐우슈우에 상륙한 직후에 각기 태어난 것으로 기록된 것이다. 오오진이 야마토 왕국의 시조이며 토착세력이 이니라고 믿게하는 기록들이다.

업코리아, U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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